오바마 “결코 오지 않을 거라던 그날이 왔다”

  • 동아일보
  • 입력 2008년 1월 5일 02시 55분



힐러리 “충격의 3위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민주 오바마 백인지역서 압승… 힐러리 대세론 치명타
공화 허커비 보수파 결집 깜짝1위… 줄리아니 6위 수모

"그들은 이런 날이 결코 오지 않을 거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너무 높은 곳을 쳐다본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해냈습니다. 냉소주의자들이 불가능하다고 했던 것을."
박수와 환호성에 파묻힌 그는 한동안 연설을 시작하지 못했다. 46세의 흑인 초선 상원의원은 "생큐(Thank you)"를 9번이나 반복한 뒤에야 이렇게 연설을 시작했다.
미국 아이오와주 주도(州都)인 디모인 시내 컨벤션센터에서 개표를 지켜보던 미국 선거전문가와 기자들 마저도 "오바마 열풍이 이렇게까지 뜨거울 줄은 몰랐다"며 놀라고 있던 3일밤 10시(현지시간)경이었다.
이날 밤 아이오와 주 코커스(당원대회) 승리 소감 연설에서 버락 오바마 의원은 "미국에 변화의 시대가 왔다. 만약 뉴햄프셔(프라이머리)에서도 기회를 준다면 차기 미국 대통령은 내가 될 것"이라며 강한 자신감을 피력했다. 워터게이트 사건을 폭로한 저명 언론인 밥 우드워즈 씨는 "역사에 남을 연설"이라고 평가했다.

이날 코커스 결과에서 미국사회가 가장 놀랍게 받아들인 것은 단연 오바마 후보의 돌풍이었다. 공화당 1위를 차지한 마이크 허커비 전 아칸소 주지사의 급부상,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과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의 부진, 존 에드워드 전 상원의원의 선전 등은 그 다음의 관심사였다.
아이오와 코커스 승리가 경선 승리를 보증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오바마의 민주당 코커스 압승을 '기념비적 사건'이라고 부르고 있다.
무엇보다 흑인대통령에 대한 미국 사회의 거부감이 놀랄 만큼 엷어지고 있음을 백인 비율이 94.6%로 미국 평균(80.1%)보다 훨씬 높은 아이오와 유권자들이 선명히 보여 줬기 때문이다.
또한 4년 전 12만 5000명에서 올해 23만9000명으로 크게 늘어난 민주당 코커스 참여자 상당수는 중도파이며 그중 절반 이상이 '변화'를 대선 키워드로 꼽은 것으로 출구조사에서 나타났다. 오바마는 특히 25세 이하 참가자 사이에서 60%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실정에 강한 반감을 갖고 있는 중도파와 젊은층이 오바마에게 쏠릴 가능성이 큼을 보여준다.
최대 무기이며 핵심 선거전략인 '대세론'이 여지없이 무너진 힐러리는 개표후 연설에서 "아직 갈 길이 멀다"며 지지자들을 안심시켰다. 옆에서 미소를 띄며 지켜보던 남편 빌 클린턴 전대통령은 기자들에게 "괜찮다. 뉴햄프셔에선 힐러리가 12%포인트 이상 앞선다"고 강조한 뒤 이날 밤 뉴햄프셔로 직행했다.
캠프 참모들은 "빌 클린턴 전 대통령도 1992년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3위를 했는데 결국 대통령이 됐다"며 서로를 격려했다.
뉴햄프셔 프라이머리는 소수의 당원들이 참가하는 코커스와 달리 일반 유권자들이 참여하고 역대 평균 투표율도 40% 이상이어서 전국적 지지도가 높은 힐러리로선 기대를 걸만하다는 전망도 나온다. 최신 뉴햄프셔 여론조사에서 힐러리는 34%로 오바마보다 4%가량 앞서고 있다.
캠프 참모들은 힐러리 후보가 '경륜'을 강조하다 '변화'까지 함께 강조하는 바람에 메시지가 다층적이고 상충되는 이미지를 줬다며 전략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역대 미국 후보 경선은 누가 바람을 타느냐에 크게 좌우돼 왔는데 힐러리는 현재 전반적으로 하강곡선이다.
민주당 선거전략가 로버트 슈럼은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힐러리가 뉴햄프셔에서 오바마 돌풍을 차단하지 못하면 오바마가 최후 승자가 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김동석 뉴욕·뉴저지 유권자센터 소장은 "민주당 내엔 힐러리로 대변되는 남부 중심 조직표에 대한 강한 반발 기류가 있는데 이게 오바마로 몰린 측면이 크다"며 "하지만 후보 경선은 결국 조직선거여서 뉴햄프셔에서 이기면 힐러리 대세론이 다시 살아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공화당에서 허커비 후보가 승리한 것은 낙태, 동성애자 결혼 합법화 등 도덕 이슈에 민감한 '사회적 보수주의자'들의 결집 덕분으로 분석된다. 이날 출구조사에서 공화당 코커스 참석자의 60%가 복음주의자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허커비 후보는 자금, 조직력이 취약하고 민주당 후보와의 가상대결에서도 저조한 성적을 보이고 있다. 정책컨텐츠가 부실하다는 지적도 있다. 허커비는 뉴햄프셔에선 4위에 불과해 민주당에서 오바마가 일으키는 돌풍과 비교할 때 그의 급부상은 기반이 약하다는 분석이 많다.
그럼에도 그는 아이오와에 자신보다 6배 이상 많은 TV 광고를 하면서 심혈을 기울여온 롬니 후보에게 큰 상처를 입혔다. 롬니는 뉴햄프셔에선 여전히 존 매케인 상원의원과 공동 선두다.
아이오와를 거의 무시해 온 루디 줄리아니 진영은 "그래도 3등은 할 줄 알았는데"라며 6위에 그친 데 실망하는 표정이다. 줄리아니는 3일밤 "대선 레이스는 마라톤"이라고 강조했다.
공화당 선거 전문가들은 결국 완만한 하강세지만 여전히 전국 지지도 선두인 줄리아니 대(對) 전통적 보수그룹 대표주자의 양자 대결구도가 형성될 것으로 내다봤다.
디모인=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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