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 논문 준비하듯 자격증 공부… 취득땐 연봉 쑥

  • 입력 2007년 10월 20일 03시 00분


미국 워싱턴에 있는 비영리기관인 ‘더 나은 가르침을 위한 센터’에서 교사들이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율동과 놀이를 섞어 학습 내용을 전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배우고 있다. 방과 후나 주말, 방학 때를 이용해 찾아오는 교사들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해 스스로 더 나은 교습 방법을 찾도록 하는 게 이 센터의 목적이다. 사진 제공 ‘더 나은 가르침을 위한 센터’
미국 워싱턴에 있는 비영리기관인 ‘더 나은 가르침을 위한 센터’에서 교사들이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율동과 놀이를 섞어 학습 내용을 전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배우고 있다. 방과 후나 주말, 방학 때를 이용해 찾아오는 교사들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해 스스로 더 나은 교습 방법을 찾도록 하는 게 이 센터의 목적이다. 사진 제공 ‘더 나은 가르침을 위한 센터’
미국의 새 화두 ‘교사 경쟁력 강화’- 워싱턴 교사 교육현장 가보니

《“5분의 1 곱하기 4분의 1은?” 미국 워싱턴 시내 비영리 교육기관인 ‘더 나은 가르침을 위한 센터(Center for Inspired Teaching)’. 둥글게 모여 앉은 초등학교 교사 25명에게 강사가 질문을 던졌다. 1초도 안 돼 다들 “20분의 1”이라고 대답하자 강사가 다시 질문한다. “어떻게들 계산하셨죠?” “분자끼리, 분모끼리 곱하면 되죠.” “그건 누구나 외우라고 교육받아온 공식인데, 그럼 선생님들, 왜 그렇게 곱하면 되는지 설명해 주시겠어요?” 교사들의 얼굴이 심각해진다. 짧게는 2년, 길게는 15년의 교단 경력을 가진 교사들은 분수 계산의 원리를 쉽게 설명할 방법을 찾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토론에 들어갔다.》

“1/15×1/14이 왜 1/120인가” 질문에 머리 싸매고 토론

학생 성적 따른 성과급제 확산… 자기계발 독려

‘학업성취도 기준 미달땐 교장 해임-폐교’ 논의중

교사 20명이 스스로 분자가 되어 일어났다 앉았다 반복해 보기도 한다. 아이들에게 단지 공식을 외우라고 가르치는 게 아니라 원리를 이해할 수 있도록 가르치기 위해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고민하는 것이다.

1년 내내 이 센터에선 교사들을 위한 교육이 끊이지 않는다. 방과 후나 주말을 이용한 워크숍에서부터 방학 중의 집중 강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거쳐 간 교사가 5000여 명에 달한다.

요즘 ‘교사의 경쟁력’은 미국 사회의 조용한 화두다. 조지 W 부시 대통령도, 의회 지도자들도 “미국의 미래는 교육에 달렸고 교육의 미래는 교사들의 자질 향상에 달렸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다시피 한다.

실제로 2, 3년 전부터 교단에 경쟁시스템을 도입해 능력 있고 열정적인 교사에게 더 나은 대우를 해 주려는 다양한 시도들이 미 전역에서 펼쳐지고 있다. 가끔 언론에 보도되는 “○○ 시와 교원노조가 성과급제 도입에 합의했다”는 뉴스는 미국 교단에 불고 있는 변화 중 겉으로 드러난 일부에 불과하다.

▽자기 계발 독려=메릴랜드 주 프린스조지 카운티 켈모어 중학교의 밥 허(한국명 허선) 교사는 지난해부터 ‘내셔널 보드 자격증(certificate)’ 과정을 밟고 있다. 최신 교육이론을 공부한 뒤 새롭고 더 효율적인 강의 모델을 만들어 수업에 적용하면서 진행 상황과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를 보고서와 비디오 자료로 만들어 제출해야 한다.

그리고 같은 과목을 가르치는 교사들과 회의를 열어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공동 연구를 해야 한다. 동료들과 교습법을 비교하며 토론하고 보완하는 작업도 계속된다. 지역사회 교육활동 참여, 교생 교육 등 자격증 취득을 위해 요구되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박사 논문 준비 못지않게 많은 노력이 요구되는 일이고 짧게는 1년, 길게는 3년 이상 걸리는 과정이지만 스스로 계속 발전하면서 학생들에게도 도움이 되므로 보람을 느낀다.

자격증을 취득하면 카운티와 주 정부에서 지원금이 나와 연봉이 1만 달러 이상 올라갈 수 있다. 메릴랜드 지역 정규 교사의 초임이 4만 달러 안팎인 점을 감안하면 큰 규모의 경제적 인센티브인 셈.

이 지역의 경우 보조교사 3년을 거쳐 정교사가 되면 카운티 또는 주 공무원으로 직업 안정성이 보장된다. 하지만 방학 중에는 월급이 나오지 않는다. 연공서열제에 따라 연봉이 해마다 조금씩 오르지만 상대적으로 박봉이다. 프린스조지 카운티 전체를 합쳐 연봉이 10만 달러를 넘는 교사가 없는 실정이다.

“학교마다 차이는 있지만 정교사가 되면 평생직업이 보장됩니다. 그러다 보니 정체돼 있는 분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2, 3년 전부터 ‘석사, 박사학위를 따라’ ‘자격증을 따라’는 등 자기계발을 독촉하는 목소리가 거세졌습니다.”

허 교사가 근무하는 중학교의 경우 78명의 교사 중 3분의 1가량이 석사학위를 갖고 있고 박사학위 취득자는 5명이다.

이 카운티는 앞으로 5년간 자격증 지원금 외에도 학생 성적 향상, 수업 분위기 평가, 동료 교사에 대한 멘터링 등 다양한 척도에 따라 1700만 달러의 인센티브를 지급할 계획이다.

▽확산되는 성과급제=뉴욕 시는 18일 교원노조와 성과급제 부분 도입에 합의했다. 총 2000만 달러를 마련해 학생 성적이 크게 향상된 학교에 나눠 주는 방식이다.

미국에서 이미 성과급제를 시행하는 대표적인 곳은 콜로라도 주 덴버. 덴버 시는 5년 전부터 학생 성적 향상뿐만 아니라 교사가 근무하는 교육환경 등 여러 변수를 종합 계산해 1인당 최대 연간 9800달러의 성과급을 지급한다.

미국의 교원노조들은 성과급제의 근거를 법률에 명시해야 한다는 부시 행정부와 의회의 정책에 반대하면서도 “능력에 따른 보상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고 설명한다.

미국교사연맹(AFT)의 에드워드 매켈로이 의장은 최근 워싱턴포스트 기고문에서 “우리가 문제 삼는 것은 학생 성적이라는 일률적 잣대만으로 교사의 성취도를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라고 밝혔다.

사실 성과급제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은 각종 인센티브 제도는 미국의 대부분 지역에서 빠르게 도입되고 있다.

워싱턴 근교만 해도 본보 취재진이 조사한 대부분의 카운티에서 최근 인센티브제가 도입된 것으로 나타났다.

버지니아 주 알링턴 카운티는 자격증 취득 등 자기계발을 하는 교사에게 봉급 사다리의 계단을 총 세 번에 걸쳐 한 계단씩 건너 뛸 수 있도록 했다.

미국 내에서도 일류 학군으로 꼽히는 버지니아 주 페어팩스 카운티의 문일룡 광역교육위원은 “최근 ‘지도 코치(Instructional Coach)’ 제도를 도입했다”며 “탁월한 성취도를 보인 교사를 코치로 지명해 코치가 동료 교사의 수업을 관찰하고 조언을 하는 제도”라고 밝혔다.

문 위원은 “초중등교육개혁법(No Child Left Behind)에 따라 교사들은 학위나 자격증 취득을 통해 교사로서의 자질을 의무적으로 높여야 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학교 차원에서 느끼는 압박감도 대단하다. 현재 갱신이 논의되는 초중등교육개혁법 개정안은 학업성취도가 만성적으로 기준치에 미달되는 학교에 대해서는 학교장 해임은 물론 폐교시키거나 사기업으로 전환하도록 하고 있다.

페어팩스 카운티 그린브라이어이스트 초등학교의 줄리 김 교사는 “주(州) 학력평가시험(SOL) 학교별 평가 점수가 나오고 그에 따라 학교별 지원액이 결정되기 때문에 성적을 올려야 한다는 압박감을 크게 느낀다”고 말했다.

美, 교사 경쟁력 높이기 위한 미국 사회의 4대 실험

○ 성과급과 다양한 자기계발 인센티브

○ 학교 퇴출 제도화(추진 중)

○ 차터(charter) 스쿨 급증에 따른 기존 공립학교 압박=공립이지만 사립학교처럼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학교. 10년 전 600개에서 현재 4000개로 급증

○ 주 단위 학력평가에 따라 학교별 차등 지원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 “교육의 질 교사에 달려 지적 호기심 자극 필요”▼

‘더 나은 가르침 센터’ 매걸리스 소장

건剋壎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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