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살아있다]제3장 러일전쟁과 조선의 식민지화(上)

  • 입력 2007년 9월 13일 15시 00분


러시아군이 철벽의 방어태세를 구축한 뤼순(旅順), 동계관산(東鶏冠山)의 요새= 사진 : 사쿠라이(桜井)
러시아군이 철벽의 방어태세를 구축한 뤼순(旅順), 동계관산(東鶏冠山)의 요새= 사진 : 사쿠라이(桜井)
도고(東郷)가 이겼다! 아시아에 아주 잠시 꿈을

《청일 전쟁 후, 러시아는 중국 동북부(구 만주)로의 지배를 강화함과 동시에, 조선에도 진출하려 하고 있었다. 일본은 조선의 독점 지배를 노리고, 대 러시아 전쟁을 준비했다. 세계에서도 유수한 군사 대국을 이긴 일본. 그 승리는 동아시아에 무엇을 가져왔는가.》

“오랜만에 온 일본인데, 어디에 갈까”

내가 잘 아는 사람으로, 금년 77세가 되는 군일 출신의 한국인 이 씨가 불쑥 도쿄로 찾아 온 것은, 올해 6월의 일이었다. 일본에서 자라 전후에 한국군에 들어가, 1950년 발발한 한국 전쟁에서는 육군 소위로서 전선에서 싸웠다. 원래 나는 취재를 통해서 이 씨의 아들과 알게 되었고 그때부터 이 씨와도 친해졌다.

◆러일 전쟁

1904~05년, 러시아와 일본이 한국과 중국 동북부(만주 지역)의 지배를 둘러싸고 벌인 전쟁으로, 일본의 승리로 끝났다. 일본 측 사망자는 약 8만 4천명으로、청일 전쟁 시(약 1만3천명)의 6•5배나 된다. 러시아 측은 약 5만 명이다.

청일 전쟁 후, 러시아는 조선에서 영향력을 강화하는 한편, 극동의 부동항을 확보하기 위해, 1898년 청으로부터 뤼순(旅順), 다롄(大連)을 조차하여 철도 부설을 진행하였다. 모스크바 대학의 아이라페트프 조교수에 의하면, 러시아 대외 정책의 기본은 대양 진출이라는 해양 전략으로, 황제 니코라이 2세는 이 전략을 전폭적으로 지지하였다고 한다.

1900년, 러시아는 의화단과의 일전을 위해 청나라로 출병하여, 진압 후에도 만주에 눌러 앉았다. 일본은 러시아와 교섭을 하면서 전쟁을 준비하였다. 교섭은 결렬되었고, 1904년 2월, 일본군은 뤼순(旅順)의 러시아 함대를 공격 개시하였고, 현재 한국의 인천에도 상륙하여 전쟁이 시작되었다. 일본군은 12월 많은 희생자를 내면서도, 뤼순항(旅順港)이 내려다보이는 203 고지를 점령하였고, 다음 해 1월에는 뤼순(旅順)의 요새를 함락하였다. 일본의 연합 함대가 5월, 일본해(한국에서는 동해라고 부르고 있으나, 일본에서 일본해로 표기하므로 일본어 표기로 함)해전에서 발틱 함대에 괴멸적인 타격을 입히자, 미국의 테오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이 강화를 알선하였다. 러시아 국내에서는 혁명 운동이 확산되어 혼란에 빠져있었고, 일본도 전쟁 비용 조달이 한계에 달하고 있던 때이어서 강화에 응했다.

가이드북을 읽은 이 씨가 고른 곳은, 러일 전쟁에서 러시아의 발틱 함대를 물리치고 영웅이 된 도고 헤이하치로(東郷平八郎)를 모시는 도쿄(東京) 하라주쿠(原宿)의 도고(東郷) 신사였다. “일본의 전술은 많은 참고가 된다. 도고(東郷) 원수를 존경 한다”

경내에 장식된 일본해(한국에서는 동해라고 부르고 있으나, 일본에서 일본해로 표기하므로 일본어 표기로 함) 해전의 그림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어 주자 만족하는 것 같았다.

전 외무성 직원으로 메이지 시대의 외교를 연구하고 있는 마쓰무라 마사요시(松村正義) 러일 전쟁 연구회 회장은 “아시아의 신흥국이 유럽의 일대 강국에 도전한 전쟁으로, 국제적인 관심을 부르지 않을 수 없는 대 사건이었다”라고 설명한다. 외국 기자로부터 종군 취재를 하고 싶다는 문의가 쇄도했다고 한다.

1905년 5월, 도고(東郷)가 지휘하는 연합 함대는 대마도에서 가까운 일본해에서 발틱 함대와 싸워 대 승리를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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