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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7년 9월 8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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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최대의 테러가 발생했던 6년 전 이맘때, 9월 11일처럼 뉴욕의 가을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참사 현장을 보기 위해 찾아온 관광객, 근처 벤치에 앉아서 한가롭게 커피를 마시는 뉴요커들…. 언뜻 봐서는 모든 것이 한가롭기만 했다.
그러나 그라운드 제로를 마주 보는 곳에 자리 잡은 9·11테러 기념관에 들어가면 비극은 아직 ‘현재’로 남아 있음을 알 수 있다.
기념관에 들어서자 9·11테러 희생자 유가족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는 리 일피(63) 씨가 기자를 반갑게 맞았다. 그는 소방관으로 근무하던 장남 조너선(당시 29세)을 테러로 잃었다.
“희생자 가족들이 중심이 되어 만든 소중한 공간입니다. 과거에 집착해서는 안 되지만 적어도 당시의 비극과 이 사건의 교훈을 후세에 전달하기 위해서는 유가족들이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죠.”
기념관에서 일하는 자원봉사자 중엔 가족을 잃은 사람, 친구를 잃은 사람, 현장에서 구조작업에 나섰던 전직 소방관 등 9·11테러와 관련이 있는 사람이 많다. 이들은 기념관에 전시된 자료를 설명해 주는 것 외에 그라운드 제로 주변을 안내해 주는 가이드 역할도 한다.
기념관에는 당시 사진과 영상, 잔해에서 발견된 유류품들이 생생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엄청난 화염의 열기에 구멍이 뚫린 수저와 휘어진 포크, 상처투성이의 휴대전화, ‘세계무역센터’ 주소가 적힌 희생자의 명함, 비행기 잔해, 건물의 철제빔….
기념관에서 방문객의 눈물샘을 가장 자극하는 전시실은 ‘추모’라는 이름을 붙인 4전시실이었다. 이 방에는 당시 그라운드 제로에서 희생된 2755명의 명단과 함께 두 개의 벽에 걸쳐 희생자들의 생전 모습을 담은 1200여 장의 사진이 붙어 있다.
기념관 측이 가족들에게 “희생자들의 생전 모습 중 가장 기억하고 싶은 장면을 담은 사진을 보내 달라”고 요청해 받은 사진들이다. 6년 전 하루아침에 떠나간 가족이 좋아하던 낚시를 할 때 찍은 사진, 아들과 야구할 때의 모습 같은 기억하고픈 일상의 편린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한 사진 옆에는 서투른 초등학교 저학년 글씨체로 “엄마, 오늘은 제가 특별히 엄마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엄마를 위해 설거지할게요”라고 쓰인 편지가 붙어 있었다.
어떤 유가족은 사진 대신 ‘스콧 마이클, 나이 26세, 출생지 뉴저지 주 글렌리지, 직장 투자은행, 사망 장소 세계무역센터, 시신 미발견’ 등의 내용이 적힌 사망증명서를 보내오기도 했다.
방문객들이 워낙 이 방에서 눈물을 많이 흘리다 보니 기념관 측은 아예 티슈를 4통이나 가져다 놓았다.
지난해 9월 6일 개관한 뒤 지금까지 28만여 명이 이곳을 찾았다. 40%는 외국 관광객이다. 희생자 유가족들도 이곳을 종종 찾는다.
뉴욕=공종식 특파원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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