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피랍 가족들 ‘극과 극’ 보도에 패닉상태

  • 입력 2007년 7월 26일 0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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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3동 한민족복지재단에 모여 있던 피랍자 가족들은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무장세력이 한국인 인질 중 1명을 살해했다는 외신이 TV 뉴스를 통해 흘러나오자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연합뉴스
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3동 한민족복지재단에 모여 있던 피랍자 가족들은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무장세력이 한국인 인질 중 1명을 살해했다는 외신이 TV 뉴스를 통해 흘러나오자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연합뉴스
“세상에 이런 일이…. 이제 어떡해야 하나…. 제발….”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무장세력에 의해 납치된 한국인 남성 1명이 살해됐다는 외신 보도가 전해진 25일 오후 9시 20분경.

서울 서초구 서초동 한민족복지재단 사무실에 모여 TV 뉴스를 지켜보던 피랍자 가족들의 입에서 신음과 함께 탄식이 터져 나왔다.

‘머지않아 피랍자들이 풀려날 것’이라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던 가족들은 이내 깊은 절망 속으로 빠져들었다.

꿈에도 생각하기 싫었던 최악의 상황에 가족들은 그저 멍하니 초점 없는 눈으로 TV만을 응시했다. 일부 가족은 손수건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고 또 다른 가족들은 목 놓아 통곡했다.

20여 분 전 8명의 피랍자가 풀려났다는 단비 같은 소식을 듣고 가까스로 절망의 늪에서 빠져나오던 가족들은 ‘최악의 소식’에 끝내 절규했다.

가족들과 함께 있던 샘물교회 김태웅 집사는 “남성 피랍자 1명이 사망했다는 외신 보도를 접한 뒤 피랍자 가족들은 큰 충격을 받았고 일부는 무척 격앙돼 있는 상태”라고 전했다.

한민족복지재단 김형석 회장은 “처음에 독일 인질도 살해됐다는 소식이 전해졌지만 사실이 아니었지 않으냐”며 “아직까지 공식적으로 확인된 것이 아닌 만큼 우리는 사망 소식을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피랍자 가족대표인 차성민 씨도 상기된 표정으로 “그동안 가슴 아픈 소식을 많이 들었다. 외교통상부에서 공식적으로 확인해 주기 전까지는 어떤 소식도 믿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탈레반 무장세력이 26일 오전 5시 반을 마지막 협상 시한으로 제시했다는 보도가 이어지자 가족들의 불안감은 극에 달했다.

같은 시간 피랍자들이 속한 봉사단을 이끌었던 배형규 목사의 제주 고향 집에서는 배 씨의 가족들이 비탄에 잠겨 있었다.

배 목사의 아버지 배호중(72) 씨는 아들이 납치된 이후 줄곧 자신이 장로로 있는 영락교회에서 부인 이창숙(69) 씨와 밤샘 기도를 하며 아들의 무사귀환을 기원했다.

배 씨는 “밝은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며 “많은 분이 함께 기도해 주고 있어 좋은 소식이 올 것으로 믿는다”고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배 목사는 제주일고, 한양대, 서강대 대학원을 졸업한 뒤 평범한 직장생활을 하다 목회자의 길을 걷겠다며 장로대 신학대학에 진학해 2001년 목사안수를 받았다.

피랍자들이 다녔던 경기 성남시 분당 샘물교회도 피랍자 살해 소식을 듣고 충격에 휩싸였다.

이날 오후 8시부터 교회 2층 본당에 모여 특별기도를 올리던 1000여 명의 신도는 피살 소식을 듣고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울음을 터뜨렸다. 교회 사무실에서도 여성 신도들의 오열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한 40대 여성 교인은 교회 앞 인도에 쓰러져 “이럴 순 없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라며 절규하다가 주위 사람들의 부축을 받고 교회 안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이날 가족들은 ‘피랍자와 탈레반 수감자 8명 맞교환 협상→피랍자 살해 위협→협상 실패 선언→거액의 몸값 지불→피랍자 8명 석방→피랍자 1명 피살…’이라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혼란스러운 소식을 접하며 희망과 절망의 끝을 오갔다.

25일 밤 12시를 넘겨 귀가했던 피랍자 가족들은 이날 오전 11시경 초췌한 모습으로 서울 서초구 서초동 한민족복지재단에 다시 모였다.

오전까지만 해도 가족들이 기다리는 ‘좋은 소식’이 전해질 것 같은 분위기가 흘렀다.

하루 종일 숨을 죽인 채 뉴스를 시청하던 가족들은 이날 오후 9시경 ‘피랍 한국인 8명이 석방돼 안전한 곳으로 이송되고 있다’는 소식에 마주 잡았던 손을 들며 환호성을 외쳤다.

탈레반 측에 억류돼 있는 나머지 15명에 대해서도 곧 석방될 거라는 기대감이 커졌다. 하지만 기대는 오래가지 못하고 절망으로 변했다.

한편 25일 오후 9시 30분경에는 불교단체인 정토회의 법륜 스님은 한민족복지재단을 찾아 재단 대표와 만나 위로의 말을 전했다.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성남=이성호 기자 starsky@donga.com

제주=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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