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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7년 6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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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이 일하고, 더 많이 벌자”는 구호를 외치며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예고한 대로 ‘프랑스 병’ 수술에 나섰다.
그는 20일 총선 당선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프랑스인은 과거의 생각, 가치, 행동과 단절하는 계획을 지지했다”며 빠르고 과감한 변화를 강조했다.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확보한 그는 26일 의회 특별회의를 열어 8월 10일까지 개혁입법 처리를 강행하기로 했다. ‘차르(황제) 니콜라’라고 그를 비판하는 노동계와 대학가의 반발 기류에 꿈쩍도 않는 눈치다.
그의 개혁안은 영미식 시장경제를 강조하고 기업의 투자 의욕과 소비자의 구매력을 높여 성장 동력을 회복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톨레랑스(관용)로 상징되는 프랑스적 가치에는 아랑곳도 않는다. ‘비효율→저성장→고실업’의 악순환 속에 재정 적자는 쌓여 가고 성장 동력은 꺼져 가는 ‘고질병’은 외과 수술 없이는 치유가 불가능하다는 인식 때문이다.
2005년 11월 취임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처했던 상황도 대동소이했다. 전후 초고속 성장의 신화를 뒤로한 채 통일 후유증과 과도한 복지에 발목이 잡혀 ‘독일 병’을 심하게 앓고 있었다. 메르켈 총리는 세금 인하와 고용 유연화, 산별 임금협약 구조의 개혁, 건강보험의 고용주 부담 완화 등 친기업 정책을 밀어붙였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독일의 경제성장률은 취임 당시 0.9%에서 2.7%로 치솟았다.
1년 6개월의 시차를 두고 집권에 성공한 두 정상은 닮은 점이 여럿 있다.
먼저 소수파라는 점이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최초의 이민자 출신이며 메르켈 총리는 최초의 여성 출신, 동독 출신이다. 또 전임자들과는 달리 미국과 선린관계를 유지하려는 친미노선을 택했다. 경제는 시장경제와 성장을 중시하는 신자유주의에 가까운 정책 노선을 밟고 있다. 메르켈 총리가 거둔 개혁성과는 사르코지 대통령에게 산 교훈이 된 셈이다.
두 정상은 외교무대에서도 화려한 조명을 받고 있다. 유럽연합(EU) 의장국인 독일의 메르켈 총리가 밀어붙이고 외교무대에 데뷔한 사르코지 대통령이 중재에 나서 23일 EU 헌법에 해당하는 ‘개정 조약(Reform Treaty)’ 합의를 끌어냈다. 이해관계가 난마처럼 얽혀 험난했던 협상 과정에서 두 정상이 보여 준 통합형 리더십에 찬사가 쏟아졌다.
개혁의 성과와 외교 역량을 인정받은 메르켈 총리에 비하면 사르코지 대통령은 거쳐야 할 관문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 아니, 막 시험대에 올랐을 뿐이다. ‘내치(內治)’에서 성과를 내지 못하면 ‘외치(外治)’의 업적은 공허해진다.
지금 지구촌에선 독일과 프랑스의 정상처럼 성장과 통합을 중시하는 실용적 리더십을 지닌 국가지도자들이 한껏 조명을 받고 있다. 세계화의 격랑 속에서 흔들리는 한국호의 뱃머리는 지금 어디를 향하고 있는 것인가.
최영훈 국제부장 tao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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