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천광암]황홀한 공장

  • 입력 2007년 4월 19일 03시 01분


‘참, 유별나네.’

며칠 전 일본 도쿄(東京) 시내 한 서점의 신간 코너에서 ‘공장 모에(萌え)’라는 사진집을 발견했을 때 처음 받은 느낌이다. 제목을 한국어로 옮긴다면 ‘공장 황홀경’ 정도가 적당할 것 같다. 사진집에는 이시이 데쓰(石井哲) 씨가 일본의 주요 공업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찍은 대형 공장의 사진과 계절별, 시간대별 감상 요령 등이 실려 있었다. 피사체는 메마르고 딱딱해 보이는 금속 플랜트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시이 씨는 “공장에는 다른 무엇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독특한 아름다움이 있다”고 주장한다. ‘섬세하고 장대한 형상, 기능미의 집대성이라고 할 수 있는 플랜트’를 보면서 가슴이 두근거리는 사람은 이시이 씨뿐만이 아니다. 이시이 씨가 2년 전 회원제 인터넷 사이트에 만든 ‘공장 감상가(鑑賞家)’ 커뮤니티에는 6000명이 넘는 회원이 참여하고 있다.

스크랩을 정리하다 보니 ‘공장 모에’는 유력 일간지에도 서평이 큼지막하게 실린 화제작이었다.

최근 일본에서 공장은 관광 자원으로도 주목받는다. 도야마(富山) 현은 지난해 7월 건자재 회사인 YKK그룹에 요청해 이 회사 구로베(黑部) 시 공장을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견학 상품으로 개발했다. 후쿠오카(福岡) 현 기타큐슈(北九州) 시는 지난해 3월 신공항 개항을 계기로 근처 닛산자동차 공장에 관광객을 집중 유치하고 있다. 지바(千葉) 현, 아이치(愛知) 현 나고야(名古屋) 시, 홋카이도(北海道), 도치기(회木) 현 등도 공장을 관광 상품으로 활용하기 위한 총력전에 나섰다고 아사히신문은 전했다.

일본인의 ‘오타쿠’(영어의 마니아에 해당) 취미와 장삿속이 유별난 것일까. 그렇지 않다. 공장 감상 취미는 일본보다 유럽의 기술 강국인 독일에서 먼저 생겨났다.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에서는 귀네드의 맥주공장이 대문호 제임스 조이스와 윌리엄 예이츠가 생전에 살던 집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관광 명소다.

국제수지 통계를 보면 일본은 2년 전 ‘무역대국’을 졸업했다. 일본의 무역수지 흑자는 2년 연속 감소한 끝에 지난해에는 9조4596억 엔에 그쳤다. 반면 투자자들과 기업이 이자와 배당으로 벌어들인 소득수지 흑자는 3년 연속 사상 최고치를 경신해 지난해 13조7449억 엔을 기록했다. 옛날처럼 열심히 공장을 돌리지 않아도 해외에 투자해 번 돈으로 편하게 먹고살 수 있는 진짜 부자 나라가 된 것이다.

그런데도 일본 정부는 해외에 있는 공장을 국내로 ‘U턴’시키기 위해 불필요한 수도권·환경규제를 잇달아 철폐한다. 일반 국민도 오염 악취 소음 같은 과거의 부정적인 이미지만으로 공장을 바라보지 않는다.

벤츠와 BMW가 즐비한 도쿄의 중상층 주택가에도 종업원 10, 20명대의 작은 마치(町·동네라는 뜻)공장이 많지만 불평하는 주민은 찾아보기 어렵다. 많은 일본인이 “마치공장이 망하면 일본 전체가 망한다”고 말한다. 이런 풍토가 깔려 있기 때문에 공장이 관광, 나아가 탐미(耽美)의 대상으로 등장하기에 이른 것이다.

반면 한국은 어떤가. 정부가 하이닉스반도체 경기 이천공장 증설을 불허한 데서 나타나듯 공장을 국토균형 발전에 역행하고 환경을 오염시키는 애물단지로 취급한다. 입으로는 일자리 창출을 외치면서 실제로는 시대에 뒤떨어진 수도권·환경·노동규제를 앞세워 일자리 창출의 주역인 공장을 해외로 떠미는 모습이다. 이런 이율배반은 언제까지 계속될까.

천광암 도쿄 특파원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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