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압박…유럽 냉대…“우리끼리 똘똘 뭉칠 수밖에…”

  • 입력 2007년 4월 3일 03시 01분


지난달 30일 오후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 시 한가운데 드네프르 강변의 대형 쇼핑센터 ‘카라반’. 은행 직원들이 “달러를 예금하면 연간 13%의 이자를 주겠다”며 외화 예치 경쟁을 벌이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현지인들은 오렌지혁명 세력의 개혁 실패로 외국자본이 예상만큼 들어오지 않은 데다 자본의 대규모 국외 이탈마저 염려돼 이런 경쟁을 낳았다고 말했다.

은행창구 직원인 예브게니 피예트로슈크 씨는 “동(러시아)과 서(유럽)에 낀 우크라이나는 독자 생존이라는 시험대에 올랐다”고 설명했다.

국내 문제에는 사사건건 입씨름을 하는 정부 관료와 정치인들도 한결같이 “카자흐스탄과 연대를 맺고 러시아의 냉대를 받는 벨로루시, 몰도바와 결속을 다져야 한다”고 말했다.

▽동서 양쪽의 냉대=지난해 9월 우크라이나의 외환보유액은 186억 달러로 전년도 말에 비해 3% 줄었으며 외채는 4% 늘어났다. 대표 산업이던 철강과 곡물이 중국산에 밀려 수출이 부진한 데다 주요 에너지 공급 국가인 러시아가 천연가스 가격을 두 배 가까이 올렸기 때문이다. 대외의존도와 외환보유액 역시 매일같이 적색경보를 알린다.

우크라이나는 최근 독립국가연합(CIS) 내 서쪽 국가인 벨로루시, 몰도바와 함께 ‘친(親)유럽 반(反)러시아’라는 대외 정책을 표방했으나 실속을 챙기지 못했다. 유럽 국가들은 이들 국가의 유럽연합(EU)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을 먼 장래의 일로 여기며 냉정한 자세를 바꾸지 않았다. 16년 전만 해도 형제국이었던 러시아는 석유와 안보를 무기로 이들 국가에 압박의 끈을 조이고 있다. 서방과 러시아를 오가는 등거리 외교도 통하지 않는다.

동서 양쪽의 불만은 우크라이나 경제를 휘청거리게 할 정도로 위력이 컸다. 키예프 시내 동쪽 강변에 자리 잡은 철공소들은 최근 천연가스 가격을 견디다 못해 문을 닫았다. 유럽과 가까운 리보프 시 인근에는 바이오디젤유 생산을 목표로 유채씨 가공 공장을 세웠지만 어느 유럽 국가도 1억 달러가 넘는 대규모 투자는 꺼리고 있다.

▽CIS 서쪽에서 뜨는 남북 협력 라인=자원 빈국이면서 본격적인 경제 개발에 들어가지 못한 국가들은 역내 국가 간 교역 증대로 독자 생존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올해 초 러시아산 석유 수입 중단 사태를 맞았던 벨로루시가 우크라이나에 먼저 손을 내밀었다. 중앙아시아의 석유와 가스를 우크라이나를 통해 들여오겠다는 목적이었다.

2만4500km 이상의 석유관과 가스관을 보유한 우크라이나는 벨로루시의 요청을 즉석에서 받아들이는 한편 남북으로 이어진 파이프라인을 최대한 활용한다는 속셈을 드러냈다. 우크라이나 남부의 오데사 항구에서 폴란드 접경지역 브로디로 이어진 667km의 파이프라인에 중앙아시아의 천연자원을 실어 나른다는 계획이다.

러시아는 CIS 남북 협력 라인을 ‘불행한 국가끼리 맺은 동맹’이라며 야유를 보냈지만 이들 국가의 교역량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추세다. 몰도바와 우크라이나의 교역량은 지난해 2.5배 늘었다. 벨로루시는 몰도바에 수출하는 산업용 기계류에 관세 혜택을 준다.

김창식 KOTRA 키예프 무역관장은 “CIS 서쪽 국가들은 당분간 러시아에 대한 의존을 벗어나기 어렵겠지만 신파이프라인 협력은 중앙아시아 에너지 분쟁에서 새로운 변수로 떠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키예프=정위용 특파원 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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