泰방콕 “쿠데타요? 워낙 잦아서 신경 안써요”

  • 입력 2007년 3월 20일 03시 01분


태국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킨 지 6개월을 맞아 태국 시민단체와 학생 수백 명이 18일 수도 방콕에서 시위를 벌였다. 이들을 단속하는 경찰의 표정에 여유가 넘친다. 방콕=EPA 연합뉴스
태국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킨 지 6개월을 맞아 태국 시민단체와 학생 수백 명이 18일 수도 방콕에서 시위를 벌였다. 이들을 단속하는 경찰의 표정에 여유가 넘친다. 방콕=EPA 연합뉴스
“쿠데타요? 놀라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여러 차례 일어난 일인데요 뭘….”

태국 방콕 시내에서 잡화점을 운영하는 쏨 퐁(46) 씨의 말. 지난해 9월 19일 손티 분야랏끌린 육군 총사령관이 쿠데타를 일으켜 탁신 친나왓 총리 정권을 무너뜨린 지 6개월이 지났지만 군부가 앞세운 수라윳 쭐라논(63) 총리 과도내각의 통치 아래 놓인 태국 국민의 표정에서 그늘을 찾기는 힘들었다. 쿠데타가 벌어진 직후에도 별반 차이가 없었다고 방콕 시민들은 입을 모았다.

쿠데타라면 공포정치와 유혈극부터 연상되는 기자에게는 너무 의외로 느껴진 태국인들의 표정이었다.

○ 군부의 실정과 불안한 정국

상당수 태국 국민의 무관심과는 달리 잦은 쿠데타는 결과적으로 태국의 정치 발전을 막고 경제성장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태국 군부는 당초 쿠데타를 일으키면서 △주식매매 차익 19억 달러를 세금 한 푼 안 내고 착복한 탁신 전 총리의 부정부패 △전 정권의 언론통제 △정부 재정지출 남용 △남부 분리주의 운동 문제 등의 해결을 약속했다.

그러나 약속을 지키지도 못한 데다 잇따른 정책 실패가 이어지면서 군부 지지도는 90%(지난해 9월 말)→70%(10월 말)→45%(올해 2월 초)→36%(2월 말)로 떨어졌다.

대표적인 실책은 지난해 12월의 외환규제책 발표. ‘애국’을 앞세운 배타적 정책으로 하루 만에 증시에서 8160억 밧(약 21조4000억 원)이 날아갔고 외국인 투자가들은 자본을 빼갔다.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지난해(5.0%)보다 낮아진 4.0%로 예상된다.

쭐랄롱꼰대에서 만난 자이 웅파콘(정치학과) 교수는 “지금 군부정권은 한마디로 무능한 정부”라며 “부패한 탁신 정부도 문제였지만 민주주의 시스템 발전에 역행하는 군부 쿠데타는 더 큰 문제”라고 말했다.

○ “선거나 쿠데타나…”

쿠데타가 벌어진 6개월 뒤 기자가 방콕 중심부 시암센터에서 만난 상당수 태국인들은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나 쿠데타를 통한 정권교체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40대의 한 용역회사 직원은 “쿠데타가 일어나길 바랐다. 탁신 전 총리가 과격한 정책으로 나라를 혼란에 빠뜨렸고, 뭔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런 반응 뒤에는 태국 특유의 정치문화가 자리하고 있다.

지난 70여 년간 19차례 벌어진 잦은 쿠데타는 국민의 의사를 묻지 않은 무력 정권교체에 태국 국민의 감각을 무뎌지게 만들었다. 다른 주요한 이유는 60년간 재임한 태국인의 ‘정신적 지주’ 푸미폰 아둔야뎃(80) 국왕이 확고한 위치를 유지하며 정치적 혼란을 막았던 것.

쿠데타에 실패해도 처벌이 가볍다는 이유도 잦은 쿠데타를 부추기는 요인이다. 방콕의 외교 소식통은 “주요 협력자들도 몇 달간 감옥살이를 할 뿐이며 단순 가담자들은 팔굽혀펴기를 서너 차례 한 뒤 원대 복귀한 적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쭐랄롱꼰대에서 만난 라트 사딩(방송학과 2학년) 씨는 문화적 측면을 강조했다. “종교적 영향으로 운명을 믿는 일반 시민들은 쿠데타가 다른 세상의 일이라고 치부해 버리고 나에게 피해가 없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죠.” 중생 구제라는 목적을 지닌 한국의 대승불교와 달리 개인의 해탈을 중시하는 태국의 소승불교가 개인주의까지 불러 온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웅파콘 교수는 “비정부기구(NGO)나 지식인들은 쿠데타에 비판적 시각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쿠데타로 인한 국정운영의 단절은 결국 태국의 발전을 저해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는 것.

특히 쿠데타의 악순환을 끊고 민주주의를 정착시키겠다는 태국 비정부기구(NGO)와 시민운동 단체의 노력도 점점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방콕=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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