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나홀로’ 테러와의 전쟁?

  • 입력 2007년 2월 6일 02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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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 보이지 않는 ‘테러와의 전쟁’에 지친 유럽 국가들이 미국 주도의 대(對)테러 전쟁 대열에서 이탈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독일 뮌헨 검찰은 지난주 레바논 출신 독일인을 납치해 아프가니스탄에서 심문했다는 혐의로 미국 중앙정보국(CIA) 관리 13명을 기소했다. 과거 같으면 그냥 지나갈 수도 있는 문제였지만 독일인들이 검찰의 결정을 지지하고 나서면서 분위기가 달라진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일간지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는 5일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에서 과거와 같은 유럽의 지지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파리 소르본대에서 유럽학을 연구하는 프레데리크 보조 교수는 “유럽의 여론이 (미국과 구별되는) 정체성을 만들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유럽 국가의 일반 국민이 미국 주도의 ‘테러와의 전쟁’에 불만의 목소리를 거침없이 쏟아내면서 정부 정책의 변화를 이끌고 있다는 설명이다.

올해 영국과 프랑스에서 치러지는 대선도 중요 변수다.

차기 영국 총리로 유력시되는 고든 브라운 영국 재무장관은 처음부터 미국의 이라크전쟁에 반대해 온 인물. 많은 영국인은 미국과 ‘특별한 관계’를 재정립하겠다는 그가 올해 말까지 이라크에서 영국군을 철수시킬 것으로 기대한다.

프랑스 대선 선두주자인 집권 대중운동연합(UMP)의 니콜라스 사르코지 후보는 “미국이 세계를 이해해야만 세계도 미국을 사랑하는 법을 배울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던지기도 했다.

나아가 미국이 주도해 온 대테러 전쟁에서 유럽 국가들의 이탈 움직임은 실무적인 분야에서도 불거지기 시작했다.

유럽연합(EU) 관리들은 지난주 벨기에의 브뤼셀에 모여 미국 정보원에게 제공해 오던 유럽 국가 출발 여행객 정보 제공 문제를 재검토한 뒤 미국에 제공하는 정보의 양을 줄이기로 의견을 모았다.

또 유럽중앙은행의 자료보호담당관은 9·11테러 이후 정기적으로 미국에 제공된 금융정보 가운데 수백만 건이 EU의 사생활보호법을 침해한다고 밝힌 뒤 이 같은 사례의 재발 방지 움직임에 나섰다.

파리 국제전략관계연구소의 조르지 르 겔티 씨는 “프랑스 여론과 수많은 독일인, 영국의 상당수 노동당원, 스페인인, 이탈리아인들이 미국 정책의 근본적인 토대에 반대하고 나섰다”고 분석했다.

최근 백악관의 외교 현안을 거론하고 나선 것은 유럽 국가뿐이 아니다. 중국 런민(人民)일보는 1일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전쟁에 종교전쟁의 의미를 부여한 점을 비판하고 나섰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도 4일 “미국이 중동 지역에서 지나친 대결 국면을 만들어 진퇴양난의 위기에 빠졌다”고 강조했다고 인테르팍스통신이 전했다.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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