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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6년 12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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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WFP 수단사무소의 윤선희(31) 씨는 ‘누구도 배고프지 않은 세상’ 만들기에 애쓰며 언젠가 그런 세상이 올 것을 확신한다. 수단의 유일한 한국인 유엔 직원 윤 씨를 e메일을 통해 만났다. 영어로 보내온 윤 씨의 편지를 재구성했다.
○ 아프리카는 내 운명
2005년 3월, 수단에 도착한 첫날이 생각나네요. 무척 더웠답니다. 평균 기온이 섭씨 47도를 넘었죠.
수단은 한국의 25배나 되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넓은 나라입니다. 여기 온 첫날 가슴이 뛰고 몹시 두근거렸어요. “이제 나는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구호활동에 참가하게 되는 거야!”
2002년 초급전문가(JPO·Junior Professional Officer·외교통상부 파견 국제기구 수습직원) 시험에 합격하니 일하고 싶은 유엔 기관을 선택하라더군요. 망설이지 않고 WFP를 지원했답니다. 그 이유는 제 지난날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전 1975년 이란에서 태어났답니다. 토목기사인 아버지를 따라 1981년부터 아프리카 남부 말라위에서 살았어요. 아버지는 수도 릴롱궤에서 도로와 다리를 지으셨죠. 그 뒤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대학을 다녔습니다.
WFP는 어린 시절부터 알았어요. 세계 최빈국 중 하나인 말라위에서 로고와 차량, 직원들을 자주 접했죠.
JPO 첫 2년간은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WFP 본부에 있었는데, 저는 그곳에서 일한 최초의 한국인이랍니다. 기부홍보 담당관으로 아시아의 여러 기부국과 연락하는 일을 맡았지요. 북한은 주요 구호 대상국이었고, 그 활동에서 한국이 가장 중요한 기부국 중 하나라는 사실에 가슴이 뿌듯했답니다.
아프리카는 제겐 제2의 고향입니다. 이곳에서 자랐고 이제는 여기서 일을 하죠. 가난하지만 마음이 착한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받은 것이 아주 많아요. 이제는 국제사회가 오랫동안 소외시켜 온 아프리카를 껴안기 위해 노력해야 할 때랍니다.
○ 굶주림 없는 세상
2004년 WFP에서 정규직 제의를 받았습니다. JPO에서 정규직이 되는 비율은 WFP의 경우 50% 정도예요. 전 긴급구호에 참여하길 원했고 현장에서 뛰고 싶었어요. 아프가니스탄에 갈 기회가 생긴 순간 WFP 수단사무소 대표를 만나게 됐고 그가 수도 하르툼에서 함께 일해 보자고 하더군요.
WFP 수단사무소는 규모가 매우 큰 조직입니다. 수단에만 33개 지부에 직원 2300명이 있어요. 올해 우리 사무소 예산은 10억 달러에 이릅니다. 우리는 거의 매일 200만 달러가량을 지출하죠. 73만 t의 식량으로 600만 명을 돕습니다.
수단에서는 보고담당관(Reports Officer)으로 업무를 시작했어요. 다르푸르 구호 보고를 시작으로 수단 남부를 다니며 현장 조사를 했습니다. 21년간 길고 긴 내전을 끝낸다는 평화협정에 수단 정부가 서명한 직후였어요.
오지 마을 팝우조(Popwojo)에서 수행한 5일간의 현장 평가를 잊을 수 없어요. 너무나 먼 곳이어서 항공편으로밖에 접근할 수 없는데, 전기나 침대는커녕 달랑 천막 하나뿐이었어요. 자려고 누우면 사방에서 ‘사극사극’ 들려오는 전갈과 뱀 기어 다니는 소리….
그래도 마을 사람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조사하지 않으면 이들이 어떤 상황에 있으며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잠시의 고통과 불편은 견뎌내야죠.
이 세상 어느 누구도 배가 고파선 안돼요. WFP의 일원으로서 아프리카에서 굶주림으로 고통받는 순결한 영혼들을 돕는 일이 한량없이 기뻤답니다.
○ 자랑스러운 한국, 한국인
2006년을 뒤돌아보니 온통 일에만 파묻혀 있었던 것 같네요. 수단 구호활동을 위해 7억 달러를 모금했고, 그만큼 열심히 일하고 또 많은 곳을 다녔습니다.
600만 명이 넘는 수단 사람이 온전한 자신의 힘으로 살아갈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어요.
새해의 소망?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다르푸르 비극의 해결을 위해 더 큰 관심을 가지는 겁니다. 제 작은 노력이 한국에서 유엔과 WFP의 위상을 알리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지요.
40년 전만 해도 한국은 국제사회의 원조를 받아야 했지만 지금은 세계 10대 경제 강국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한국은 WFP의 상위 20개 기부국 중 하나입니다. 뿌듯한 일이죠.
제 바람 또 하나를 이야기한다면 유엔에 한국인 직원이 더 많아졌으면 해요.
유엔 차기 사무총장으로 ‘한국인’ 반기문 장관이 정해졌을 때 그 자랑스러움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죠. 저도 동료들에게서 셀 수 없이 많은 축하인사를 받았고요. 새 사무총장님이 훌륭하게 일을 해낼 것을 의심치 않습니다.
○ 기자의 추신: 윤선희 씨에게 결혼 여부를 물었지만, 밝히지 않았다. 인터뷰가 끝난 뒤 다시 e메일을 보냈지만 “부모님이 살고 계신 말라위에서 크리스마스 휴가를 보내고 있다”는 답만 돌아왔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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