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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6년 11월 28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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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에서 미국이 그토록 찾던 대량살상무기(WMD)가 나왔다. 그런데 사담 후세인 전 대통령의 핵 프로그램이 아니다. 젊은 미군 병사의 목숨을 차례로 앗아가고 이라크 종파 간 분쟁에서 민간인 희생자를 양산한 WMD, 그것은 바로 소련제 낡은 AK-47 소총이었다.”
AK-47 소총을 연구해 온 작가 래리 커해너 씨가 26일 미국 워싱턴포스트에 기고한 글의 결론이다. 이날은 이라크전쟁 시작 3년 8개월 7일째. 미국의 제2차 세계대전 참전 기간을 넘어서는 날이다.
이 총이 WMD로 불리는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이 총의 희생자는 줄잡아 연간 25만 명. 이 총은 부품이 단순해 분해 조립이 쉽다. 이라크에서는 12세 소년들도 다룰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국제테러조직 알 카에다의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이 선전전을 위해 비디오 녹화를 할 때면 의례적으로 이 총은 빈 라덴의 곁에 놓여 있었다.
현재 제3세계에서 유통되는 중고총의 값도 ‘닭 한 마리 가격’이라고 그는 표현했다. 실제로 이날 야후 쇼핑몰에서는 신형 AK-47 소총이 25달러에 거래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단 군사용이 가스 분사형이라면 쇼핑몰에서 거래되는 총은 스프링을 사용하는 점이 다르다.
올여름 이 총의 제작자였던 미하일 칼라시니코프(86) 씨는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회한의 눈물을 훔쳤다. “나치 독일에 밀린 조국을 위해 만든 총이 테러범의 손에 쥐어져 민간인이 희생되는 장면이 TV에 보일 때마다 가슴이 미어졌다”고 했다.
이제 이 총은 살상용 소총 시장의 80%를 차지할 정도로 압도적 존재가 됐다. 1947년 이후 1억 자루가 넘게 팔렸고 북한군도 이 총으로 무장했다. AK-47이란 이름은 칼라시니코프(Kalashnikov)가 1947년에 만든 자동(Automatic)소총이란 뜻이다.
AK-47은 미국엔 실로 통한의 무기다. 중동지역 특히 아프가니스탄의 무장세력에 보급된 적지 않은 AK-47은 1980년대 미국 스스로 구입해 돌린 것이기 때문이다.
또 미국은 베트남전쟁의 수렁에서 AK-47과 처음 맞부딪쳐 M16을 서둘러 개발해야 했다.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英서 본격판매 60주년 변함없는 인기…불멸의 볼펜▼
볼펜이 본격 판매되기 시작한 지 이번 주로 꼭 60주년이라고 영국 BBC방송 인터넷판이 27일 소개했다.
1938년 헝가리 신문기자 라슬로 비로는 윤전기용 잉크가 금방 마르는 데 주목했다. 그는 잉크가 새고 뭉치고 번지는 만년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윤전기용 잉크를 사용해 봤다.
그러나 잉크 농도가 너무 진해 만년필 펜촉 끝으로 흘러나오지 않았다. 비로는 화학자인 동생의 도움으로 펜촉 대신 금속 볼 베어링이 달린 펜을 고안했다. 볼이 종이와의 마찰로 회전하면서 잉크가 조금씩 흘러나오도록 한 것.
비로 형제는 헝가리의 반(反)유대법을 피해 서방세계로 탈출한 뒤 1943년 아르헨티나에서 볼펜 발명으로 특허를 취득했다. 그 후 한 영국 회사가 이들에게서 특허권을 사들여 제2차 세계대전 때 공군용으로 볼펜을 생산했고 1946년 본격 판매를 시작했다.
잉크를 다시 채울 필요도, 흘러나올 걱정도 없는 ‘빅 비로스(Bic Biros)’ 볼펜은 조종사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줄줄 새는 만년필로 곤혹을 겪던 조종사들이 아무 때나 편리하게 쓸 수 있는 볼펜을 손에 쥐게 된 뒤 중요한 목표물을 바로바로 표시할 수 있게 돼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는 해석도 있다.
많은 나라에서 볼펜의 대명사처럼 불리는 빅 비로스 상표의 볼펜은 초당 57자루가 팔려 나간다. 60년 전 상품치고는 꽤 ‘장수’하는 셈이다. BBC는 작고 보잘것없는 볼펜이지만 이동성과 신뢰성 면에서는 압도적이라고 전했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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