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인권법원은 ‘러시아 제4법정’?

  • 입력 2006년 10월 30일 03시 01분


“러시아인들의 인권 호소로 업무가 마비될 지경입니다. 재판 실무자를 10%나 늘렸는데도 말입니다.”

지난주 모스크바를 방문한 루치우스 빌트하버 유럽인권법원장은 기자들에게 법원을 소개하며 이렇게 말했다.

유럽인권법원은 46개국이 조인한 유럽인권협약에 따라 프랑스에 세워진 법정이다. 러시아는 1998년 이 협약을 비준했다. 이 법원이 러시아인이 제소한 사건에서 승소 판결을 내리면 러시아 정부는 개인에게 배상금을 물거나 합당한 행정 조치를 내려야 한다.

이 법원이 처리하는 사건은 주로 공권력에 의한 인권 탄압 사건이다. 최근 러시아인들의 제소가 줄을 잇는 바람에 유럽인권법원이 업무량 폭증을 호소하게 된 것.

법원에 따르면 러시아인들의 제소로 법원이 심사한 사건은 2003년 4738건에서 지난해 8088건으로 70% 이상 늘었다. 46개 유럽 국가 중 러시아인의 제소 비율이 20%로 2003년부터 1위 자리를 내놓지 않고 있다.

올해 3월 유럽인권법원에서 25만 유로 배상 판결을 받은 전직 경찰관 알렉세이 미헤예프(29) 씨는 러시아 법정에서 “허리뼈까지 부수는 경찰의 고문에 못 이겨 강간 살해 의혹을 자백했다”고 호소했다. 러시아 판사들은 그의 무죄 호소를 일축했지만, 그가 수감된 지 4년이 지난 2002년 그가 살해했다는 여자는 멀쩡한 상태로 나타났다.

이처럼 인권을 경시하는 풍조 때문에 러시아 법원에서 처리되는 굵직한 사건은 유럽인권법원으로 다시 넘어가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조세포탈 혐의로 러시아에서 구속 수감된 미하일 호도르콥스키 전 유코스 회장의 인권문제도 유럽인권법원에서 처리될 전망이다.

모스크바=정위용 특파원 viyonz@donga.com

러시아인의 유럽인권법원 제소(단위: 건)
연도2003년2004년2005년
제소606278558781
사건 심사473858358088
재판 회부1564110
자료: 유럽인권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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