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격 지령’ 해독, 제2의 9·11 막았다…비행기 테러 적발까지

  • 입력 2006년 8월 12일 03시 01분


지난해 여름 영국 국내정보부(MI5)는 한 정보원에게서 “영국의 젊은 무슬림들이 뭔가를 모의하고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 7월 런던 버스 테러가 일어난 직후였다.

전례 없는 규모의 미행과 휴대전화 감청이 시작됐다. 버스 테러 용의자의 진술과 제보를 통해 얻은 인물 정보를 중심으로 은밀한 탐색전이 벌어졌다. MI5 요원들은 이들이 어느 세탁소에서 세탁물을 찾아가는지, 어느 상점에서 무엇을 얼마에 구입하는지 샅샅이 뒤졌다.

그 결과 확인되기 시작한 것은 이들이 ‘미국 9·11테러보다 더 큰 것’을 꾸미고 있다는 뚜렷한 정황들. 10일 성공 직전까지 갔다 극적으로 무산된 영국발 미국행 비행기 동시다발 테러 음모는 이렇게 포착됐다.

12월 영국 경찰이 수사에 본격 합류했다. 대(對)테러 전문가들은 자금의 흐름을 집중 분석해 용의자들이 엄청난 규모의 돈줄과 연결돼 있다는 것을 찾아냈다. 파키스탄 출신을 비롯해 최소 수십 명이 연결된 조직범죄라는 점이 밝혀지면서 수사망은 확대됐다.

수사 과정에서 MI5의 비밀 첩보원이 이번 테러를 모의한 단체에 위장 잠입했다고 CNN은 전했다. 파키스탄 정보부(ISI)와 미국 정보당국의 공조수사도 이뤄졌다.

이를 통해 비행기가 테러 대상이며 액체 형태의 폭발물을 손가방 속에 숨겨 기내로 반입하는 수법이 동원될 것이라는 정보가 차례로 입수됐다. 뇌관으로 사용될 기폭 장치는 MP3플레이어 ‘아이팟’이나 휴대전화에 숨길 것이라는 정보도 확인됐다.

그러나 정확한 비행기 편명과 시간대, 목적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답보상태에 있던 수사는 테러 용의자 2명이 최근 파키스탄을 방문해 테러 자금을 전달받은 사실이 포착되면서 가속도가 붙었다. 지난주에는 파키스탄에서 테러용의자 7명이 체포됐다.

파키스탄 용의자가 체포된 직후 감시 중이던 영국의 용의자에게 메시지가 하나 전달됐다. 72시간 내에 전문가들이 첨단장비를 동원해 해독해 낸 메시지는 ‘지금 공격하라(Do your attacks now)’는 충격적인 것이었다.

영국 경찰과 정보당국은 즉각 9일 저녁부터 런던, 버밍엄, 하이와이콤 등에 흩어져 있는 용의자 21명의 거주지를 급습했다. 용의자 중 최연소는 17세. 이들 중에는 런던 히스로 공항의 구석구석을 출입할 수 있는 공항 직원도 포함돼 있었다.

테러 용의자들은 뉴욕, 워싱턴, 샌프란시스코, 보스턴, 로스앤젤레스의 5군데 도시 상공에서 최소 12대의 비행기 폭발을 계획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성공했다면 9·11테러로 사망한 2700명보다 더 많은 사람이 죽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외신은 분석했다.

영국 정보당국이 체포했다고 11일 최종 발표한 테러 용의자는 모두 24명. 정보 당국은 추가로 3, 4명의 용의자를 추적 중이며 가담자가 최대 50명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이 1995년 미수에 그친 ‘보진카 사건’을 업그레이드한 것으로 보고 있다. 9·11테러의 총지휘자인 칼리드 셰이크 모하메드는 1995년 액체 폭발물을 이용해 11대의 항공기를 태평양 상공에서 동시에 폭파시키려는 계획을 세웠던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의 암호명이 ‘보진카(빅뱅·대폭발) 작전’. 기존 보안장비로는 탐지해 낼 수 없는 액체 폭발물을 콘택트렌즈 세척액에 숨기고 항공기에 탑승한 다음 카시오 전자손목시계를 이용해 폭발시킨다는 계획이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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