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쩌뚱, 대장정 탈락할 뻔…중원대권 구경도 못할 뻔

  • 입력 2006년 8월 9일 19시 55분


중국 인민해방군인 홍군(紅軍)의 '대장정(大長征)'을 통해 공산당의 주도권을 장악함으로써 사회주의 중국의 국부(國父)가 됐던 마오쩌둥(毛澤東)이 정작 대장정 출발 때는 제외될 뻔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실권세력을 끝까지 설득해 승낙을 얻어낸 저우언라이(周恩來)가 없었다면 마오는 천하를 호령할 기회조차도 얻지 못할 뻔 했던 것.

신화(新華)통신은 9일 이 같은 사실을 보도하면서 "이는 1980년대 초반 사학계에서 공인되고 일반에도 공개된 사안"이라고 전했다.

장시(江西) 성 간저우 시 당사편찬실 링부지(凌步機) 부주임은 "이는 해방군출판사가 1984년과 1993년 발간한 우슈취안(伍修權)의 '나의 역정'과 '캉커칭(康克淸) 회고록'에 소개됐었다"고 말했다.

러시아어 통역으로 대장정에 참여한 우슈취안은 저서에서 "당초 그들(지도부)은 중앙영도의 핵심에서 밀려나 있었던 마오쩌둥을 데려가지 않으려 했다"고 회고했다.

통신은 당사 전문가를 인용해 "1934년 9월 중앙혁명군사위원회가 대장정 참여자를 결정하면서 우경(右傾)으로 분류한 인물들은 제외했다"고 전했다.

당시 군사위는 중화임시정부 주석이자 중앙홍군의 주요 창건자로 군에서 매우 높은 신망을 얻고 있던 마오를 홍군 주력부대의 이동에 참가시키지 않고 장시 성 위두(于都) 현으로 보내 조사연구 업무를 맡기려 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마오의 경호요원이었던 우지칭(吳吉淸)도 1983년 출간한 저서 '마오 주석 곁에서의 삶'을 통해 "대장정 출발 때 중앙부대의 명단에 마오의 이름이 없었다"고 술회했다.

역시 그의 경호요원이었던 천창펑(陳昌奉)은 1986년에 출간한 '마오 주석 장정을 좇아'에서 "마오가 중화임시정부 주석이었지만 실제로는 역경에 처해 부단한 비판을 받았다"며 "그의 올바른 주장은 곧잘 '우경 기회주의'로 매도됐다"고 회고했다.

결국 저우언라이가 줄기차게 지도부를 설득해 장정 출발 전날 밤에서야 겨우 동참시키기로 최종 결정이 내려졌다는 것.

링부지 부주임은 "마오를 대장정에 참여시킬 것인지, 잔류시킬 것인지에 대한 결정은 마오 개인의 안위 뿐 아니라 당과 홍군, 중국혁명의 명운과도 직결된 것이었다"고 말했다.

베이징=하종대특파원 orionh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