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 좌파도미노 美턱밑서 ‘스톱’

  • 입력 2006년 7월 8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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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자(貧者)를 위한 좌파 민족주의냐, 글로벌 경제 편입을 위한 우파 시장주의냐를 놓고 대립했던 멕시코 대통령 선거에서 우파의 펠리페 칼데론(43) 후보가 근소한 차이로 승리했다.

이에 따라 중남미를 휩쓸고 있는 좌파 물결이 한풀 꺾인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50만 표 차 승리=멕시코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6일 밤 “집권 국민행동당(PAN)의 칼데론 후보가 35.89%(1530만 표)를 얻어 35.31%(1480만 표)를 얻은 좌파 민주혁명당(PRD)의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후보를 앞섰다”고 발표했다. 단 50만 표 차(0.58%포인트).

‘좌우를 아우른다’는 정책으로 2000년까지 71년간 정권을 잡았던 제도혁명당(PRI)의 로베르토 마드라소 후보는 22.26%를 얻는 데 그쳤다.

멕시코 대선은 2일 치러졌지만 근소한 차이가 부를 개표 시비를 막기 위해 3일간의 공식 개표 준비를 거쳐 5일 최종 검표가 시작됐다.

그러나 좌파 오브라도르 후보는 “개표 과정이 문제투성이”라며 개표 결과 불복종 운동 전개를 선언함으로써 향후 멕시코 정국에 혼란이 예상된다. 미국 분석가들은 ‘(좌파가 배제된 채) 집권 우파와 (좌우 색채가 분명하지 않은) PRI의 연정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점치고 있다. 칼데론 후보의 임기는 12월 1일 시작된다.

▽우파 승리의 의미와 과제=칼데론 후보의 당선은 멕시코 유권자들의 시장주의를 ‘한번 더’ 믿어 보겠다는 의지가 ‘못 살겠다 갈아 보자’는 민심을 간신히 앞섰다는 것을 의미한다.

칼데론 후보는 시장 우선, 자유무역 확대, 외국인 투자 촉진, 공기업 개혁의 이행을 다짐해 왔다.

그러나 2위 후보와의 차이가 50만 표에 불과해 칼데론 당선자가 앞으로 시장주의 정책을 펴 나가는 동안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새 정부가 넘어야 할 산은 많다. 뉴욕타임스는 지난달 “공기업 개혁, 전투적 노조문화 개선, 극빈층 구제, 기본교육 확대는 여전히 높은 벽”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코카콜라 중남미본부 사장 출신인 폭스 대통령이 2000년 집권 이후 시장경제 정책을 실시했지만 그 과실이 골고루 돌아가지 못한 상황이다. ▽좌파 도미노의 종착점=선거 기간 내내 관심사는 남미를 휩쓴 반미 민족주의적 좌파바람이 미국의 턱밑까지 차오를 것이냐에 모아졌다. 멕시코 콜롬비아를 제외하면 중남미 주요국에서 우파 후보를 찾아보기 어렵다. 좌파 오브라도르 후보는 선거 1주일 전에 치러진 최종 여론조사에서 2∼3%포인트 앞설 정도로 우파 후보를 줄곧 앞서 왔다.

그러나 남미 포퓰리즘의 상징적 인물이 돼 버린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멕시코 선거에 개입한 것이 역작용을 불렀다. ‘멕시코는 좌파 후보를 선택하라’는 그의 내정 간섭적 발언이 우파 후보의 TV 광고를 통해 급속히 전파됐고, 부동표였던 멕시코 중산층 유권자들은 ‘덜 불안한 지도자’인 칼데론 후보를 선택했다.

워싱턴=김승련 특파원srkim@donga.com

■ 칼데론 당선자는…

멕시코의 차기 대통령으로 확정된 펠리페 칼데론 당선자는 미국화, 글로벌화, 엘리트주의를 대표하는 신세대 정치인이다. 멕시코 역사상 최연소 대통령이기도 하다.

칼데론 후보는 자유무역 확대와 기업우대 정책, 외국인 투자유치, 감세정책 등 신자유주의 경제노선을 앞세웠다. 선거전에서도 “법인 및 고소득층에 대한 세금 인하야말로 투자를 촉진하는 결정적인 요소이고, 나아가 저소득층의 일자리를 위한 최선책”이란 공약을 제시하면서 좌파 후보와 뚜렷한 대조를 이뤘다. ‘빈부 격차가 심한 멕시코의 사정을 외면한 자살 공약’이란 말도 들었지만 끝내 승리를 거머쥐었다.

칼데론 당선자는 미국과 가까운 북부 자본가를 대표하는 국민행동당(PAN) 창당 주역의 아들로, 대통령이 되기 위한 조기교육을 받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멕시코에서 법학과 경제학을 배웠고 하버드대 케네디대학원에서 행정학을 공부했다. 이러한 경력으로 ‘파워포인트를 사용하는 첫 대통령’으로 통한다. 부인 역시 PAN 소속 하원의원을 지낸 바 있다.

26세 때 멕시코 시의원에 당선되면서 정치에 입문했고, 이후 3년 임기의 연방 하원의원을 2차례 지냈다. 32세 때인 1995년 제2당이던 PAN의 총재에 올랐다. 고향인 미초아칸 주지사에 출마했다가 고배를 든 적이 있다.

1910년 스페인에서 독립한 뒤 70년간 멕시코를 1당 지배해 온 제도혁명당(PRI)에 맞서 지난번 대선에서 같은 당 소속의 비센테 폭스 대통령이 승리하면서 국가경영의 수업 기회도 얻게 됐다.

그는 2000년 멕시코개발은행 총재에 지명됐고, 2003년부터 5대 산유국인 멕시코의 에너지장관을 지냈다.

그러나 너무 일찍 ‘대권의 꿈’을 표시하는 바람에 폭스 대통령과 멀어졌다. 올해 초 당내 경선에서는 폭스 대통령의 후계자로 지명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경선에서 극적인 역전 드라마를 펼치며 후보 자리를 거머쥐었다.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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