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전쟁, 경제교육이 열쇠다]<下>일본의 현장·체험 학습

  • 입력 2006년 4월 7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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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쿄증권거래소 3층에 마련된 ‘시장체험실’의 모습. 학생들이 쏟아져 나오는 뉴스 속보를 스스로 판단해 주식을 사고파는 가상 게임을 할 수 있다. 경제와 주식 거래를 가상으로 체험할 수 있어 교육 효과가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본 도쿄증권거래소 3층에 마련된 ‘시장체험실’의 모습. 학생들이 쏟아져 나오는 뉴스 속보를 스스로 판단해 주식을 사고파는 가상 게임을 할 수 있다. 경제와 주식 거래를 가상으로 체험할 수 있어 교육 효과가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엄마 저건 뭐야?”

“우주왕복선이 6400km의 높이에서 지구를 돌고 있는 모습이란다.”

“우주왕복선 옆에 있는 저 빌딩 모형이 진짜라면 높이가 얼마나 될까?”

“7700km란다.”

“그게 뭘 뜻하는 거야?”

“우리나라 정부의 빚을 1만 엔짜리로 한 장씩 쌓아 올리면 높이 7700km 빌딩과 같아진다는 뜻이란다.”》

5일 오후 3시경 일본 도쿄(東京)의 최고 관광 명소인 도쿄타워 4층 ‘느낌! 어찌할까 경제관’ 안. 국가 부채의 심각성을 알기 쉽게 보여 주는 모형물 앞에서 엄마의 설명을 듣는 초등학교 보타마 유키(防玉由希·13) 양의 표정은 자못 심각했다. 하지만 자리를 옮겨 다른 전시물을 둘러보는 동안 보타마 양의 표정은 다시 밝아졌다.

다른 곳에는 일본 경제의 활력을 보여 주는 20가지 실제 사례가 만화와 사진을 곁들여 재미있게 소개돼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회사를 세운 소녀 사장, 쇠똥에 대한 규제가 없어진 덕분에 장수풍뎅이를 사육해 도시 어린이들에게 공급해 줄 수 있게 됐다는 농부, 불가능의 대명사였던 ‘파란 장미’를 개발한 회사 이야기 등….

이곳을 운영하는 내각부의 미쓰하시 마코토(三橋誠·34) 정책조사원은 “기업가 정신, 규제 완화, 연구개발 등이 어려움에 처한 일본 경제를 살리는 길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데 전시의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 문을 연 지 넉 달 만에 이곳을 다녀간 관광객은 청소년을 중심으로 20만 명 선.

일본은 ‘경제대국’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청소년들에게 돈에 대해 가르치는 것을 오랫동안 금기로 여겨 왔다. 치열한 입시 경쟁 때문에 경제 교육 내용은 교과서 위주의 딱딱한 수업에 치우쳐 있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알기 쉬운 사례와 재미있는 체험을 통해 청소년들이 경제 문제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데 정부와 공공기관, 일선 학교가 팔을 걷어붙였다.

일본 도쿄타워 4층의 대표적 전시물. 일본의 국가 부채를 1만 엔짜리로 쌓으면 높이 7700km 건물(왼쪽)이 된다. 오른쪽 건물은 개인금융자산을 1만 엔짜리로 쌓은 것으로 높이가 1만4300km.

도쿄증권거래소가 대표적인 곳 가운데 하나.

3일 오후 도쿄증권거래소 3층. 가상거래 컴퓨터 24대가 설치된 ‘시장체험실’ 안은 주식게임 학습을 하고 있는 중학생 20여 명이 뿜어내는 열기로 뜨거웠다.

컴퓨터에 뜨는 뉴스 속보의 내용을 보고 학생들 스스로 판단해서 가상으로 주식을 사고판 뒤 최종적인 투자 손익을 정산하는 것이 게임의 내용.

‘도쿄외환시장에서 미국 달러화에 대한 엔화 환율이 23전 올랐습니다.’ ‘미국 대기업이 꽃자동차(게임에 등장하는 기업 이름) 주식을 공개 매집하기로 했습니다.’ ‘꽃자동차의 실적이 지난해보다 20% 늘었지만 당초 예상보다는 줄었습니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뉴스 속보는 어지간한 어른에게도 판단이 쉽지 않은 내용이었다.

학생들은 때로는 당황하고 망설였지만 대부분 자신 있게 자판을 두드렸다. 한 차례 연습 게임을 했고 주가가 결정되는 원리에 대해서도 미리 설명을 들었기 때문이다.

중학교 3학년 이와이 아야코(巖井絢子·16) 양은 “지난해 참가 신청을 했으나 신청자가 많아 오지 못했다”면서 “오늘 주식게임 학습을 체험해 보니 교과서로 공부할 때보다 훨씬 재미있고 유익했다”고 말했다.

도쿄증권거래소의 주식게임 학습은 일선 학교에서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도쿄도립 니시(西)고의 아라이 아키라(新井明·56) 교사는 도쿄증권거래소의 주식게임 학습 프로그램으로 1996년부터 경제 교육을 해 왔다.

아라이 교사는 이뿐이 아니라 1학년 학생들에게 실제로 기업을 만드는 상황을 가정해 기획안을 만들어 발표하도록 하고 있다. 기업가 정신을 키워 주려는 목적에서다.

도쿄=천광암 특파원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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