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위해 거짓말 이라도…중국판 '마지막 잎새'

  • 입력 2006년 3월 26일 18시 03분


코멘트
"아빠, 내가 정말 톈안먼(天安門)에 왔네요!"

한 소녀가 장중하게 울려 퍼지는 중국 국가 속에 오성홍기가 서서히 올라가자 미소를 지으며 힘겹게 오른손을 이마에 올려 국기에 경례를 했다. 곁에 서있던 아버지는 소리 없이 눈물을 훔치며 경례를 하는 딸의 오른손을 붙잡아 주었다.

뇌종양으로 죽음을 앞둔 8세 소녀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22일 지린(吉林)성 창춘(長春)시 공공관계대학 운동장에서 2000여명의 창춘 시민들이 톈안먼 국기 게양식을 연출한 사연이 보도돼 중국인들이 감동의 물결에 휩싸였다.

지린성 주타이(九台)시 루자(廬家) 초등학생인 주신웨(朱欣月)는 지난해 10월 체조시간에 갑자기 쓰러졌다. 뇌종양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아버지 주더춘(朱德春·43)씨는 딸의 병을 고치기 위해 대도시인 창춘으로 나왔지만 딸의 병은 점점 깊어져 올 1월에는 시력까지 잃었다.

평소 국기 게양 장면을 좋아했던 신웨는 병석에서 "베이징(北京) 톈안먼 광장에서 오성홍기가 게양되는 장면을 직접 보고 싶다"는 소망을 말했다. 주씨는 딸을 데리고 베이징에 가려 했지만 의사는 "머리에 물이 찬 상태라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고 장거리 여행을 반대했다.

주씨는 딸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창춘 시내를 차로 몇 바퀴 돌고 국가가 울리는 적당한 장소를 찾아 딸에게 "톈안먼에 왔다"고 거짓말을 하려 했다.

주씨 부녀의 안타까운 사연이 주변에 알려져 현지 신문인 청스(城市)만보에 소개되자 시민들은 창춘시 공공관계대학에 가짜 톈안먼을 만들기로 했다.

'텐안먼' 연출에는 둥베이(東北)사범대학 학생들이 주축으로 나섰다.

22일 오전 9시 버스 한 대가 신웨를 태우고 '베이징'으로 출발했다. 대학생들은 안내원과 승객들로 가장해 같은 버스에 탔다. 가는 도중 배역을 맡은 '안내원'은 "선양(瀋陽)에 도착했습니다" "베이다이허(北戴河)를 통과했습니다"고 안내 방송을 했다.

오후 1시 버스가 '베이징'에 들어서자 '경찰'이 차를 세웠다. 베이징어를 공들여 연습한 경찰은 "외지 차량은 들어갈 수 없다"고 유창하게 말했다. 신웨는 버스를 내려 119번 공중버스로 갈아타야 했다. 버스에는 왕푸징(王府井·톈안먼광장 근처 번화가) 가는 길을 묻는 외국인, 서툰 남방 사투리를 쓰는 '외지인'들이 타고 있었다.

오후 1시30분. 신웨가 탄 버스가 창춘시 공공관계대학 운동장의 톈안먼 광장에 도착했고 학생 의장대의 국가에 맞춰 오성홍기가 하늘 높이 올라갔다. 국가 연주가 끝나고 한 '인민해방군 의장대원'이 신웨에게 다가서자 그녀는 힘겨운 목소리로 "아저씨 고생 많으시네요"라고 속삭였다. '중국판 마지막 잎새'는 그렇게 연출됐다.

인터넷사이트에는 "너무 감동적이다. 신웨의 병이 꼭 나았으면 좋겠다" "거짓말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글들이 쏟아졌다.

베이징=황유성특파원 yshwa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