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쿠데타설 속 국가비상사태 선포

  • 입력 2006년 2월 24일 15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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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리아 아로요 필리핀 대통령[동아일보 자료사진]
글로리아 아로요 필리핀 대통령
[동아일보 자료사진]
'피플 파워(민중 혁명)'의 3번째 희생자가 나올까.

2001년 1월 '2차 피플 파워'로 집권한 글로리아 아로요 필리핀 대통령이 벼랑 끝에 몰렸다. 수도 마닐라에는 수천 명의 시위대가 '글로리아를 몰아내자'라는 플래카드를 앞세우고 하야 요구를 하고 있다.

필리핀을 20년 동안 통치해온 독재자 페르디난도 마르코스 대통령이 1986년의 '1차 피플 파워'로 축출될 때의 상황이 재현되고 있다. 또 2001년 8000만 달러의 뇌물을 수뢰한 혐의로 권좌에서 쫓겨난 조지프 에스트라다에 이어 '피플 파워'의 칼날이 이번에는 아로요 대통령을 겨누고 있는 것이다.

▽민주보다 빵이 먼저=아로요가 하야 위협에 처한 요인 가운데 가장 큰 것은 경제난.

1970년대 초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으로 '잘 나가던' 국가경제가 파탄 직전이다. 8400만 명의 인구 가운데 40%가 하루 1달러 미만의 소득으로 살아가는 절대빈곤층으로 전락했다. 1970~2003년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3.6%에 그쳤다.

1971년 1인당 국민소득이 206달러로 태국, 인도네시아, 중국을 앞질렀으나 현재는 태국의 3분의 1수준인 1000달러에 불과하다.

국가부채는 1000억 달러에 이르러 정부 세입의 47%를 이자 갚는데 쓸 정도.

재정난으로 인해 교육에 대한 투자는 1999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3.4%에서 지난해 2.4%로 떨어졌다. 보건 분야 지출은 0.5%에서 0.19%로 추락했다.

2004년 대통령에 다시 당선된 아로요는 일자리 600만개의 일자리 창출, 외국인직접투자(FDI) 유치확대를 통한 경제난 해결을 '공언(公言)'했지만 '공언(空言)'에 그쳐 국민들의 불만이 고조됐다.

▽군부장악 실패=아로요 대통령은 9대 대통령인 고(故) 디오스다도 마카파갈의 딸이란 후광을 업고 정계에 입문해 지지기반이 취약한 것도 문제다.

이를 의식한 아로요 대통령은 2004년 취임 직후 옛 정권의 비호를 받으며 매관매직을 통해 부를 축적해온 정치군인의 강제 전역과 군 예산 투명화를 통한 군 개혁을 약속했지만 구두선(口頭禪)에 그쳤다.

결국 이는 2003년 7월 군 개혁을 주장하는 사관학교 출신 소장파 장교들의 쿠데타 기도사건으로 불거졌다. 또 일부 정치장교들이 아로요에 반기를 든 정치인, 기업인들과 연계해 쿠데타를 일으킨 뒤 '혁명평의회'를 출범시키려다 적발되기도 했다.

22일 군 당국이 발표한 쿠데타 음모를 포함해 아로요 대통령의 축출을 노린 쿠데타 기도는 공식적으로만 6차례다.

앞서 20일 대통령궁 안에서도 군부가 개입된 것으로 보이는 폭발사고가 있었다.

폭발사고 직후 군부단체 두 곳이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밝히면서 "아로요 대통령이 물러날 때까지 저항을 계속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지난해 7월에는 아로요 대통령의 남편이 불법 도박조직에게서 뇌물을 받았다는 의혹까지 터져 나왔다. 아들과 가족들이 연루된 부정 의혹도 이어졌다.

든든한 정치적 후원자였던 코라손 아키노 여사와 피델 라모스 전 대통령의 퇴진 요구도 부담이다. 특히 첫 여성 대통령을 지낸 아키노 여사는 "아로요 대통령이 지난해 5월 대선에서 부정선거를 통해 집권했기 때문에 국정혼란이 생긴 것"이라면서 아로요의 명예로운 하야를 주장했다.

'피플 파워' 20년이 되는 25일 예정된 대규모 반정부 집회는 아로요 대통령 하야 정국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이호갑기자 gd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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