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이라크 대통령, 너희는 누구냐” 후세인, 재판 거부

  • 입력 2005년 10월 20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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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창살 피고인석19일 이라크 바그다드의 특별법정에 모습을 드러낸 두자일 마을 학살사건의 피고인 7명. 쇠창살 피고석 앞줄 오른쪽에 사담 후세인 전 대통령이 있고 그 뒤편에 타하 야신 라마단 전 부총리가 앉아 있다. 서 있는 사람은 아와드 하마드 알반데르 전 혁명재판소 소장. 바그다드=AP 연합뉴스
쇠창살 피고인석
19일 이라크 바그다드의 특별법정에 모습을 드러낸 두자일 마을 학살사건의 피고인 7명. 쇠창살 피고석 앞줄 오른쪽에 사담 후세인 전 대통령이 있고 그 뒤편에 타하 야신 라마단 전 부총리가 앉아 있다. 서 있는 사람은 아와드 하마드 알반데르 전 혁명재판소 소장. 바그다드=AP 연합뉴스
“당신은 이라크인이고 내가 누구인지 안다. 당신들이야말로 도대체 누구냐. 난 이라크 대통령이다.”

사담 후세인(68) 전 이라크 대통령에 대한 ‘세기의 재판’이 시작됐다. 2003년 12월 그의 고향인 티크리트 농가의 지하 토굴에서 미군에게 체포된 지 22개월 만이다.

이날 재판은 미국이 아랍권의 지도자를 법정에 세운 첫 사례이자 후세인 전 대통령의 혐의 내용이 갖고 있는 폭발력 때문에 세계의 주목을 받아 왔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날 심리를 마친 뒤 11월 28일까지 재판을 휴정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CNN 방송은 “국제법을 잘 알지 못하는 변호인들에게 시간적 여유를 줘 재판 준비를 충분히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조치”라고 분석했다. 또 재판에 대해 미국이 배후에서 조종하는 ‘정치적 쇼’라고 주장하는 변호인단과 국제사회의 비난을 비켜가기 위한 고육책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뻣뻣한 후세인=19일 정오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 그린 존(안전지대)에 위치한 바트당 당사에 마련된 이라크 특별법정. 후세인 전 대통령은 함께 재판을 받는 7명의 측근들이 들어온 뒤 2명의 교도관의 호위를 받으며 마지막으로 법정에 들어 왔다. 한 손에는 이슬람 경전인 코란을 들고 있었다.

재판을 참관한 CNN 방송의 크리스티안 아만포 특파원은 “그는 시종일관 자신에 대한 재판 자체가 불법이므로 인정할 수 없다는 태도로 일관했으며 중간 중간 웃는 여유도 보였다”고 전했다.

그는 우선 피고인의 성명 연령 직업 주소 등을 묻는 리즈가르 모하메드 아민 주심판사의 인정신문을 거부했다. 3칸으로 분리된 쇠창살 피고석 맨앞 왼쪽에 앉았다가 벌떡 일어나 판사석을 향해 삿대질을 하며 재판의 부당성을 주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민 판사가 앞으로 재판 과정에서 충분히 변론할 기회가 있으니 자리에 앉으라고 명령했으나 후세인 전 대통령은 말을 듣지 않았다. 10여 분간 실랑이가 계속됐다. 판사는 계속 이름을 물었고 후세인 전 대통령은 “나는 이라크 대통령으로서 헌법상 권리를 갖고 있다”면서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아민 판사는 이번 재판을 통해 후세인 피고가 1982년 7월 두자일 마을에서 143명의 주민을 학살한 죄를 먼저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유는 1987∼88년 쿠르드족 학살, 1991년 걸프전 이후 발생한 시아파 봉기 무력진압 등 후세인 피고에게 걸린 다른 혐의들에 비해 입증이 쉽기 때문. 유죄가 인정되면 후세인 전 대통령은 최고 사형까지 선고받을 수 있다.

▽수니파 반발 예상=11월 말 심리가 재개되면 재판의 합법성을 둘러싼 논란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칼릴 알 둘라이미 변호사를 중심으로 한 변호인단이 특별법정의 위법성을 집중적으로 따지겠다고 공언했기 때문.

후세인 전 대통령도 이날 불법으로 이라크를 점령한 미국이 배후에 있는 재판의 합법성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또 후세인 정권 시절 권력을 잡았던 수니파들의 조직적 반발도 예상된다. 수니파들은 이번 재판을 자신들의 입지를 약화하려는 미국과 시아파-쿠르드족의 음모로 간주한다. 재판 하루 전에는 후세인에 대한 경의를 표하고 재판이 무장저항의 새로운 장을 열 것이라는 옛 바트당 명의의 성명도 나왔다.

나아가 재판의 불똥이 미국으로 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공개 재판이 진행되면서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후세인 정권을 지원한 미국의 ‘추악한 모습’이 폭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호갑 기자 gd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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