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줄이려면 흑인 낙태시켜라? 발언 파문

  • 입력 2005년 10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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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감소가 목적이라면 모든 흑인 아기를 낙태시키면 된다.”

지난달 28일 미국 세일럼 라디오의 한 고정 프로그램. 토크쇼 사회자이자 이날 프로그램 출연자인 윌리엄 베넷 씨가 청취자와 전화 대화를 나누면서 무심코 던진 이 한마디가 일파만파를 일으키고 있다. 베넷 씨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절 교육부 장관, 조지 W 부시 대통령 취임 이후 식품의약국(FDA) 국장을 지냈고 도덕 재무장론을 펴 온 보수주의자다.

베넷 씨는 ‘발언의 파장’을 깨달은 듯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하고 웃길 뿐만 아니라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일이다. 하지만 어쨌건 범죄율은 내려갈 것이다”라고 바로 부연 설명했다.

그러나 그 정도 해명으로 넘어갈 일이 아니었다. 하워드 딘 민주당 전국위원회(DNC) 위원장은 “공화당의 가치가 결국 이런 것이냐”고 비난했다. 심지어 보수적 여성단체인 여성독립성 포럼 측은 “이런 점 때문에 보수적인 흑인들도 공화당을 신뢰할 수 없다”며 공격에 가세했다.

베넷 씨는 지난달 30일 “라디오에서 한마디 했다고 전체 문맥을 살펴보지도 않고 이렇게 매도하는 것은 부당하다. 이런 말은 학술서적에 나오는 말이다”라고 항변했다. 그가 말한 ‘학술서적’이란 미국에서 12주 이상 베스트셀러 1∼5위를 오르내리고 있는 경제서적 ‘Freakonomics(프리코노믹스·한국 번역서명은 괴짜경제학)’. 이 유명한 경제서적에도 비슷한 주장이 나온다는 항변이었다.

저자인 시카고대 스티븐 레빗 교수는 책에서 ‘뉴욕 시에서만 1990년 2245건이나 발생한 살인사건이 2003년에 596건으로 줄어든 이유’를 소개했다. 범죄가 감소한 것은 흔히 말하듯 경제 성장, 총기 규제, 경찰력 강화 때문이 아니라 ‘1973년의 낙태합헌 판결’ 때문이라는 게 레빗 교수의 주장이다. 즉, 값비싼 불법 낙태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저소득 저학력 미혼모가 1973년 이후 저렴한 낙태시술을 받을 수 있게 되면서, ‘만약 그때 태어났더라면 1990년대에 범죄자가 됐을지도 모르는 후보군’ 자체가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물론 책에서는 미혼모가 ‘흑인’이라는 말이 등장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저자는 자신의 분석이 정치적 공방에 휘말리는 것을 경계했다.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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