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의 흑인 표심잡기 ‘링컨프로젝트’ 카트리나 악재

  • 입력 2005년 9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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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흑인 유권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추진해 온 ‘링컨 프로젝트’가 허리케인 카트리나 때문에 존폐의 기로에 섰다.

지난주 퓨리서치센터가 내놓은 여론 조사 결과를 보면 흑인 응답자의 3분의 2가 “정부의 늑장 대응에 인종차별 요소가 개입됐다”고 대답했다. 10% 선에 머무르고 있는 흑인 지지율을 ‘조금만 더’ 끌어 모으려는 공화당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 수 있는 대형 악재를 만난 것이다.

▽공화당의 링컨 프로젝트=지난해 대통령선거 당시 오하이오 주에서는 미묘한 변화가 감지됐다. 2000년 대선 때 9%였던 흑인 유권자의 ‘부시 지지율’이 16%로 뛰어오른 것이다. 낙태와 동성애 문제가 쟁점으로 떠오르면서 보수적인 흑인 기독교도의 표가 몰린 결과였다. 흑인 유권자가 보여 준 전국 지지도는 11%.

이때부터 공화당 인사들은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을 자주 거론했다는 것이 워싱턴 정치권의 분석이다. 부시 대통령의 백악관 집무실에는 링컨 대통령의 흉상이 놓여 있고, 그가 올해 1월 취임사에서 링컨 대통령을 인용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공화당의 생각은 간명하다. 가뜩이나 접전을 벌인 주(州)가 많은 상황에서 일부 흑인표의 이탈은 선거 전체의 당락을 좌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부시 대통령의 1급 선거참모 출신인 켄 멜먼 공화당 전국위원회 의장은 링컨 프로젝트를 위해 총대를 멘 인물. 워싱턴포스트는 올해 6월 “멜먼 의장이 올 1월 이후 흑인 대학, 흑인 인권단체, 흑인 소비자연합체를 모두 19차례나 찾아가 연설했다”고 보도했다.

멜먼 의장은 7월 전미흑인지위향상협회(NAACP) 행사에 참석한 자리에서는 “과거 공화당의 흑인 표 무시정책은 잘못됐다. 때론 흑백 갈등을 이용하기까지 했다”며 ‘고해성사’까지 했다. 공화당에는 상하원을 통틀어 흑인 의원이 1명도 없다.

▽불똥 차단 노력=부시 대통령은 12일 허리케인 피해 지역인 뉴올리언스를 3번째 방문한 자리에서 “허리케인은 피부 색깔을 봐 가면서 덮치지 않았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가 지난주 루이지애나 주를 방문했을 때는 흑인사회에서 신망이 높은 T D 제이크스 목사와 동행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또 백악관으로 흑인 교회 지도자를 다수 초청해 흑인 피해자 구제를 위한 장기 전략을 제시하기도 했다. 잇따른 대선 패배로 궁지에 몰렸던 민주당은 허리케인이 부른 정치적 호재를 십분 활용하고 있다. 유일한 흑인 상원의원인 바랙 오바마 의원은 11일 ABC방송에 출연해 “9·11테러 직후 보여 준 대통령의 열정이 이번엔 왜 안보였느냐”고 꼬집었다.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링컨 프로젝트:

미국 공화당의 흑인 표 획득 전략. 19세기 노예 해방을 선언한 에이브러햄 링컨(사진) 대통령이 공화당 출신이라는 점에 착안해 붙인 이름이다. 공화당은 1960년대 말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남부 백인 표 장악을 위한 ‘남부 전략’을 펴면서 흑인 유권자를 포기했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흑인지위향상협회 워싱턴 지부장“늑장대응이 흑인차별인지 조사해보자”

조지 W 부시 미국 행정부가 카트리나의 발생 초기에 늑장 대응을 한 것은 피해 주민이 저소득층 흑인이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표적 흑인단체인 전미흑인지위향상협회(NAACP)의 힐러리 셸턴(사진) 워싱턴 지부장은 9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차별 대응 문제는 뭐라고 말하기 어렵다. 일단 사태 수습에 최선을 다한 뒤 조사 결과를 기다려 보자”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카트리나로 흑인 사회의 비참한 모습이 드러났다. 왜 이런 현상이 빚어졌나.

“노예제 때문에 흑인과 백인은 출발점이 달랐다. 미국은 기회의 나라지만, 흑인의 희생으로 축적된 부가 편중돼 상속이 이루어졌다. 결국 흑인은 저소득층 흑인끼리만 모여 살게 됐고, 미국의 가치인 다양성과 통합의 경험을 하지 못했다.”

―흑인의 미혼모 양산, 낮은 교육성취도를 두고 흑인의 책임의식 부재를 문제 삼는 쪽과 시스템의 실패라는 쪽의 주장이 팽팽하다.

“둘 다 문제다. 개인은 노력할 의무가 있다는 점에서 흑인 사회가 책임질 부분이 있다. 그러나 갑자기 ‘이젠 평등해졌으니까 백인과 흑인이 함께 경쟁해라. 그리고 경쟁에서 밀리면 흑인 탓’이라고 말하면 너무한 것 아닌가.”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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