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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5년 6월 22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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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은 흘렀지만 40년 전의 한일 국교정상화 반대운동을 후회하진 않는다. 일본이 과거 역사에 대해 뼈저리게 반성하고 사죄하는 것이 우리를 비롯한 아시아 민족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이다.”
1964년 한일 국교정상화 회담을 격렬하게 반대하다 투옥됐던 이재오(李在五·한나라당 의원·사진) 6·3동지회 회장은 21일 지난 40년 동안의 한일 관계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6·3동지회는 정부가 1964년 6월 3일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한일회담 반대자들을 구속한 ‘6·3사태’에서 비롯된 이름.
한국 정부는 정략적인 목적을 위해 한일 국교정상화를 서두른 ‘원죄’가 있어 이후 일본에 당당하지 못했고, 일본은 단 한 번도 과거 잘못을 진정으로 뉘우친 적이 없다는 게 이 회장의 주장이다.
그는 “당시 우리는 한일회담 자체가 아니라 굴욕적, 졸속적으로 추진되는 회담을 반대한 것”이라며 “정부는 청구권, 어업협정, 문화재 반환, 재일동포의 법적지위 등에서 민족 자존심이 상할 정도로 굴욕적으로 임했고 이는 또다시 민족정신을 일본에 팔아넘기는 일이라고 판단했다”고 회고했다.
이 회장은 “이웃나라를 더 이해하도록 노력하되 과거 일본의 잘못이나 이를 연상시키는 군사대국화 움직임은 용서할 수 없다는 확고한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윤종구 기자 jkmas@donga.com
●한국서 15년생활 야마구치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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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변했죠. 1990년대 초만 해도 서울 지하철에서 일본 책을 보면 뒤통수가 따가웠어요. 지금은 일본어로 인사를 건네는 한국인도 있는 걸요.”
서울 마포구 홀리데이인호텔의 야마구치 레이코(山口禮子·55·사진) 지배인은 한국 생활 15년을 회고하며 감회에 젖었다. 문화인류학을 전공한 그는 ‘일본 문화가 한국을 거쳐 형성됐다’는 것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1990년 서울에 왔다.
처음엔 한국인들의 눈초리가 너무 따가웠다. 남편과 이야기할 때도 귓속말로 소곤거려야 했다. 하지만 1995년 8월 무라야마 도미이치 당시 일본 총리가 식민 지배에 대해 ‘통렬하게 반성’한다고 밝힌 뒤 한국의 반일 감정이 수그러들었다. 야마구치 지배인은 “무라야마 총리가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고 말했다.
최근 한일관계가 악화됐지만 그는 다시 좋아질 것으로 낙관했다. 그는 그러면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가 왜 외교마찰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를 고집하는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그는 이런 질문을 던졌다. “친일파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없앨 수는 없나요. 일본을 좋아하고 일본 문화에 관심이 높은 한국인들이 많지만 드러내놓고 말하질 못해요. 친일파라고 손가락질을 받으니까요.”
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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