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동치는 中東]美 “민주화의 지니, 풀려났다”

  • 입력 2005년 3월 7일 18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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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6일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의 레바논 철군 발표가 미흡하다며 “시리아의 해외금융자산 동결을 포함한 새 제재조치를 검토하고 있다”고 시리아를 몰아붙였다. 그가 이미 여러 차례 언급한 것처럼 시리아에도 ‘민주주의’를 이식시키겠다는 태도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준 중동 내 일부 지역의 민주화 바람은 미국의 압력 때문이 아니라 각국의 특수 사정에서 비롯된 것일 뿐이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두 가지 상반된 시각을 짚어 본다.》

‘부시가 옳았던 것(What Bush Got Right).’

시사주간지 뉴스위크 최신호(13일자)에 실린 중동문제 전문가 파리드 자카리아 씨의 칼럼 제목이다.

모두가 중동의 민주화는 ‘꿈’일 뿐이라며 고개를 내저었을 때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만큼은 그것이 꿈이 아니라 ‘현실’이 될 수 있음을 믿었고, 그런 부시 대통령의 판단은 옳았다는 내용의 칼럼이다.

자카리아 씨는 먼저 부시 대통령의 중동관이 ‘중동 민주화 바람’에 큰 몫을 했다고 주장했다.

부시 대통령의 ‘중동관’은 간단명료하다. 중동이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낙후한 것은 수십 년간 계속돼 온 독재 때문이며, 중동의 근대화는 바로 그런 현실에 메스를 대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것.

또 아랍권의 테러리즘은 이스라엘과의 충돌이나 서방 세계에 대한 반감 때문이라기보다 이 같은 구조적 문제가 만들어낸 부작용 때문이라는 게 부시 대통령의 주장이다.

부시 대통령은 이런 중동관을 바탕으로 중동의 개혁을 압박했고, 실제 효과를 거두고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대(大)중동 구상’이다. 행동보다 말이 앞섰던 과거 지도자들과는 확실히 다른 모습이다. 자카리아 씨는 이에 대해 “(중동 민주화를 위해) 국제적 연대를 강화하려는 부시 대통령의 노력이 놀랄 만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도 사설(2일자)을 통해 “아직 봄은 아니지만 티그리스와 나일강가에, 그리고 베이루트와 가자 시가지에 조심스러운 희망의 기운이 맴돌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이 신문은 그 희망의 실례로 프랑스와 이례적인 연합전선을 만들어 냄으로써 시리아의 레바논 철군을 요구한 점이나, 이집트의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이 직선제를 수용하도록 압박을 가한 것 등을 들었다.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의 ‘기관지’로 불리는 위클리 스탠더드(14일자)는 “알라딘의 요술램프 속에 갇혀 있던 민주화의 지니가 이제 풀려났다”며 한발 더 나아가 북아프리카 지역의 민주화까지 주문했다.

이 잡지는 “프랑스가 튀니지, 알제리 등 북아프리카의 민주화에 얼마만큼 열의를 갖고 동참하는지 시험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정안 기자 credo@donga.com

▼전문가들 “아랍 독재정권기반 아직 든든”▼

“올 1월 30일 이라크 총선은 1989년 체코슬로바키아의 벨벳혁명, 2003년 말 그루지야의 장미혁명, 2004년 12월 우크라이나의 오렌지혁명의 연장선상에 있다.”

지난달 24일 슬로바키아의 수도 브라티슬라바를 방문한 조시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이라크 총선을 중앙아시아의 옛 소련 국가들의 민주화 혁명과 동일시했다. 그 이후 미 언론들은 중동에 부는 변화를 부시 정부가 중동에서 추진해 온 민주화 전파 작업의 결실로 규정했다.

▽속단은 아직 일러=미 국무부는 지난달 28일 오마르 카라미 레바논 총리의 사임 발표 직후 “레바논의 피플 파워가 ‘백향목(栢香木·레바논 국기에 그려진 나무)혁명’을 일궈냈다”며 흥분했다. 미국의 일부 언론은 이를 ‘무혈 인티파다(intifada·민중봉기)’로 평가하며 레바논의 민주화 바람을 북아프리카 이슬람 국가들에까지 확산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인터넷판은 4일 “미국이 올해를 ‘아랍 민주혁명의 해’로 부르는 것은 너무 일찍 팡파르를 울리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지난달 10일 사우디아라비아의 40여 년 만의 첫 지방선거, 같은 달 27일 이집트의 대통령 직선제 수용, 레바논 주둔 시리아군의 철수 등 중동에서 일고 있는 변화 모두가 잠시 ‘스치는 바람’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수한 상황이 원인=이코노미스트는 특히 미 정부가 민주화운동의 성공작으로 꼽고 있는 팔레스타인, 이라크, 레바논 사례는 특수한 상황이 만들어낸 ‘변주곡’일 뿐 중동의 보편적인 케이스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우선 레바논은 다른 중동 국가들이 민중의 민주화 욕구를 억누르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오일 머니’가 없어 중앙정부의 통제력이 약하며 시위대를 진압할 치안병력도 없다. 그에 반해 국민은 교육수준이 높아 정치적 이슈에 민감하고 거리로 쏟아져 나온 수만 명의 시위대 모습이 TV를 통해 생중계될 정도로 언론의 자유도 어느 정도 보장돼 있다.

또 팔레스타인과 이라크의 선거는 이스라엘과 미국의 통제하에 놓인 상태에서 치러졌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 영국왕립국제문제연구소의 마이 야마니 연구원은 “최근 중동에서 민주주의가 진행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반대”라며 “아랍의 독재 정권들이 서구 정치모델의 일부를 받아들여 권력기반을 더욱 공고히 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최근 중동의 변화를 보는 두 시각
미국 시각구분중동 시각
중동 민주화 도미노 현상현 상황 인식일시적 현상
성공적인 민주선거이라크 총선미국 지배 아래 짜맞춰진 선거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장기 집권을 끝내는 혁명적 조치이집트 개헌아들에게 권력 승계를 끝낸 상태에서 벌이는 요식 행위
40여 년 만에 실시하는 지방선거사우디 지방선거여성 유권자 배제, 낮은 유권자 등록률 등으로 인한 미완성 선거
타임 뉴스위크지,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중동정책이 중동 민주화 바람의 계기”종합 분석아랍의 지도자들이 권력유지를 위해 서구 정치모델을 일부 도입

이호갑 기자 gdt@donga.com

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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