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재선 유력]싱겁게 끝난 플로리다

  • 입력 2004년 11월 3일 18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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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도 패자도 따로 없는 밤이었다. 미국 대통령선거의 최대 격전지로 꼽혔던 플로리다의 유권자들이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손을 들어준 2일 밤 공화당 자원봉사자들은 승리의 기쁨에 환호했고, 민주당 자원봉사자들은 서로 위로의 포옹을 나눴다.

자정을 앞둔 오후 11시 마이애미 동쪽의 밸 하버에 위치한 비치하우스 호텔. 민주당 자원봉사자들이 자축파티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분위기는 차갑게 가라앉았다. TV방송은 부시 대통령의 지지율이 52, 53%대를 오르내리며 존 케리 민주당 후보를 줄곧 앞서고 있다는 상황을 시시각각 전하고 있었다.

케리 후보의 패배가 굳어진 11시반경. 이들은 서로를 끌어안으며 그동안의 노고를 위로했다.

리투아니아 출신으로 광고회사에 다니는 스티브 셉카도 그 자리에 있었다. 자원봉사자로 일한 그는 “오늘 하루만 거동이 불편한 노인층 유권자 15명의 집을 찾아가서 투표장까지 모시고 돌아왔다”고 했다.

오후 4시경 그와 함께 흑인 할아버지 헨리 카슨(75)의 집을 찾아갔다. 한국전쟁에 16개월간 참전했다는 그는 세 차례나 중풍을 맞은 탓에 휠체어에서 일어나 자동차에 오르는 것조차 힘들어했다. 그는 “4년 전엔 누워 있느라 투표를 안했지만, 케리 후보가 질 것이란 이웃의 말을 듣고 투표장에 나서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날 밤 해변에서 도심 쪽으로 20km가량 떨어진 코럴 게이블스 하야트 호텔에서는 공화당 자원봉사자들의 야외파티가 열렸다. 초대형 스크린에는 아니나 다를까, ‘공화당 방송’으로 불리는 폭스뉴스가 띄워져 있었다. 이들은 플로리다 선거 결과가 TV 화면에 나올 때마다 “고, 플로리다(Go, Florida·앗싸, 플로리다)”를 외치며 좋아했다.

이날 플로리다주 선거는 언제 ‘재검표 소동’을 겪었느냐는 듯이 차분하게 진행됐다. 마이애미-데이드 카운티 청사 1층에 마련된 투표소 옆에서는 처음 도입된 전자투표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한 검증팀이 마이애미 지역의 실제 투표와 전산집계가 일치하는지를 확인하는 작업을 병행하고 있었다. 테스트 결과는 ‘이상 무’.

일부 부재자투표가 우편배달 도중 분실됐다는 보도가 나오자 민주당 지지자 가운데는 “4년 전에는 대법원이 대통령을 결정하더니, 이번에는 우체국이 대통령을 뽑는 것 아니냐”는 자조 섞인 농담이 나오기도 했다. 허탈한 표정이었다.

마이애미=김승련특파원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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