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방형남 칼럼]韓美관계, 새 출발과 혼란

  • 입력 2004년 11월 3일 18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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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미국 대통령 선거만큼 미 유권자들이 고민한 선거는 없었다. 미국을 이끌어갈 지도자를 고르는, 4년마다 되풀이되는 선거가 아니라 미국의 미래를 결정하는 운명적인 선택처럼 보였다. 세계 각국 사람들이 이번처럼 뜨거운 관심을 기울인 미국 대선도 없었다. 미국과 관계가 깊으면 깊은 대로, 관계가 멀면 먼 대로 각자 사상 최고의 관심을 쏟았다. 한국도 구경꾼처럼 지나치지 않는다. 남의 나라 선거지만 미국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에 대한 관심, 한미 관계가 어떻게 변할지에 대한 걱정은 남의 고민이 아니다.

▼4년전 불행 반복 안 된다▼

묘하게도 한미 관계는 4년 전 일정을 정확하게 반복하고 있다. 2000년 10월 25일 매들린 올브라이트 당시 미 국무장관이 한국에 도착해 다음 날까지 서울에 머물렀다. 미국 대선 직전이었다. 4년이 지난 올해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이 올브라이트의 일정대로 10월 25일부터 26일까지 한국을 찾았다. 역시 미 대선을 눈앞에 둔 시점이었다.

4년의 시차가 있기는 하지만 올브라이트와 파월이 한국의 대통령 및 외교통상부장관과 논의한 양국의 최대 현안은 북한이었다. 올브라이트는 서울 방문에 앞서 10월 23∼25일 평양에 들어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이틀에 걸쳐 6시간 동안 역사적인 회담을 했다. 올해 파월 장관은 서울 방문에 앞서 일본 도쿄와 중국 베이징에 들러 양국 지도자들을 두루 만났다.

올브라이트의 서울 방문은 북-미 정상회담 추진 등 긍정적 소식을 전하는 일정이었지만 이후 북-미 관계는 희망에서 절망으로 바뀌었다. 민주당에서 공화당으로 정권이 바뀌면서 미국의 대북정책이 급변했기 때문이다. 현재의 북-미 관계는 아슬아슬하다. 반복된 미 국무장관의 스케줄처럼 북-미 관계 변화가 되풀이될 가능성도 있다. 절망에서 희망으로 변할 수도 있지만 설상가상(雪上加霜)이 될 수도 있다.

돌이켜보면 한국은 미 정권의 새 한반도 정책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2001년 봄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의 첫 정상회담은 악화되는 북-미 관계와 순조롭지 못한 한미 관계를 예고하는 전주곡이었다.

4년 전 불행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한반도 정책에 대해서는 미국의 새 행정부와 철저한 ‘정책 공조(共助)’를 해야 한다. 한미 현안은 북한 핵, 주한미군 재배치, 이라크 파병의 3대 줄기로 요약할 수 있다. 3가지 모두 한국이나 미국만의 과제가 아니라 공통의 짐이다. 한 나라의 입장이 일방적으로 반영될 사안도 아니다. 양국이 보조를 맞춰야 앞으로 잘 나아갈 수 있는 ‘2국(國) 3각(脚)’의 처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지난주 도쿄에서 만난 일본 외무성 고위관리의 발언이 최선의 길을 찾는 힌트를 주었다. 북한과의 협상에 장기간 참여해온 이 관리는 ‘4차 6자회담을 9월 이전에 개최하기로 한 합의’를 이행하지 못한 가장 큰 책임은 북한에 있다고 단언하면서 “북핵 문제는 다자회담으로만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남북화해를 포함한 커다란 평화는 포괄적으로 접근해야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2國3脚관계 잘 활용해야▼

먼저 한국의 입장을 확고히 해야 한다. 그리고 미 행정부와 조율에 나서야 한다. 2국 3각의 입장인 만큼 활용할 수 있는 지렛대(leverage) 활용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라크 파병은 한국이 활용할 수 있는 훌륭한 카드다. 우리가 그렇게 하려고 해서가 아니라 일본인 피살사건에서 보듯 이라크 파병은 점점 더 값을 따지기 어려운 희생이자 기여가 되어가고 있다.

한국과 미국의 대선 시간표 차이 때문에 겪어야 하는 혼란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 해도 예고된 혼란이라면 방지책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한미 관계도 새 출발을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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