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참사 3주년]<1>장소-대상-방법 가리지 않는다

  • 입력 2004년 9월 6일 18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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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시의 중심인 맨해튼 남부의 세계무역센터(WTC) 쌍둥이 빌딩이 자리 잡았던 일명 ‘그라운드 제로’의 공사 현장.-뉴욕=연합
미국 뉴욕시의 중심인 맨해튼 남부의 세계무역센터(WTC) 쌍둥이 빌딩이 자리 잡았던 일명 ‘그라운드 제로’의 공사 현장.-뉴욕=연합
《9·11테러가 발생한 지 3년. 유일 초강대국 미국은 분노와 의지를 불태우며 테러와의 전쟁을 벌였다. 하지만 전쟁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아프가니스탄의 카불과 이라크 바그다드를 함락시켰는데도 총소리는 멈추지 않았고 사담 후세인을 체포했는데도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종전(終戰) 선언’은 했지만 종전은 없었다. ‘유럽의 9·11’로 불리는 스페인 마드리드 열차테러가 터졌고 다시 ‘러시아판 9·11’이 터져 10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 이상한 전쟁은 이제 장소(Where), 방법(What), 대상(Whom)을 가리지 않고 우리 곁에 성큼 다가와 있다.》

2004년 9월 2일 미국 뉴욕의 공화당 전당대회 마지막 날.

9·11테러 3주년을 앞두고 극도의 테러 경계 속에 진행된 대회는 그간의 우려와는 달리 무사히 끝났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맨해튼을 탈출했던 뉴욕 시민들도 귀향길에 올랐다.

숨을 죽인 채 뉴욕을 바라보던 세계인들이 안도의 한숨을 채 내쉬기도 전에 테러는 전혀 의외의 곳에서 일어났다.

러시아 남부 북(北)오세티야공화국의 베슬란 제1공립학교 참사. 사상 최악의 인질극이었다.

▽‘9·11’은 계속 된다=3월 스페인 마드리드 열차 테러가 ‘유럽의 9·11’이라면 8월 러시아 여객기 2대 추락과 베슬란 인질극으로 이어진 테러는 ‘러시아판 9·11’로 불린다. 미국의 9·11에 이은 제2, 제3의 9·11이 연이어 터진 셈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인질극이 벌어진 직후 “우리는 전쟁 중”이라고 선언했다. 그는 “테러단체들이 러시아를 겨냥해 전면전을 감행하고 있다”면서 “이는 모든 러시아인에 대한 도전이며 러시아는 결코 테러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주어(主語)만 미국에서 러시아로 바뀌었을 뿐 3년 전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했던 말과 꼭 같았다.

▽‘테러의 3W 시대’=9·11 이후 3년이 지났지만 테러는 장소(Where), 대상(Whom), 방법(What)을 가리지 않는 이른바 ‘3W 시대’를 맞고 있다. 발생 장소(Where)는 러시아, 스페인, 사우디아라비아, 모로코, 인도, 인도네시아 등 전 세계 20개국으로 확산됐다. 이라크전쟁에 강력히 반대했던 프랑스, 독일도 이슬람 과격주의자들의 공격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이라크에서 벌어진 프랑스 기자 피랍사건은 전통적으로 대(對)중동 중립외교를 펼쳐왔고 500만 이슬람교도가 살고 있는 프랑스도 테러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독일 역시 3월 대규모 인명살상 테러를 계획하던 용의자가 체포됐으며 아프리카를 순방 중이던 요하네스 라우 대통령은 이슬람 테러조직이 암살을 계획하고 있다는 첩보에 따라 지부티 방문을 취소했다.

‘테러 무풍지대’로 알려진 스위스도 5월 전체 인구의 20%를 차지하는 외국인들이 테러에 동원될 가능성이 있다며 경계와 예방조치를 강화했다.

테러의 대상(Whom)도 여자, 어린이, 노인에 이르기까지 무차별적이다. 이번 러시아 인질극 사상자 1000여명 중 절반 이상이 어린이다.

테러의 방법(What) 역시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

‘동시 테러’가 급증하고 있고, 암살이나 폭탄에 의존했던 수단 역시 여객기 미사일 공격(2002년 11월 28일 ·케냐), 여객기 폭발(2004년 8월 25일·러시아) 등으로 바뀌고 있다.

▽테러는 전쟁의 새 얼굴=미국의 전쟁학자 마틴 프로필드는 지난해 펴낸 저서 ‘전쟁의 변화’에서 “전쟁의 형태가 원시시대로 되돌아가고 있다”고 했다. 냉전 이후 대규모 군사력을 동원한 정규전이 아닌 테러나 게릴라전이 전쟁을 대신하고 있다는 얘기다. 프로필드씨는 “냉전 종식 이후 정규전으로 미국을 이길 수 있는 국가나 집단은 지구상 어디에도 없다”면서 “테러가 일상화하게 된 이유는 최첨단 무기 개발과 무관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힘이 약한 집단이 미국 러시아 등 강력한 국가를 상대로 싸움을 벌일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테러뿐이란 얘기다.

전쟁학을 전공한 이춘근(李春根) 자유기업원 부원장은 “인터넷과 휴대전화의 등장으로 세계에 흩어져 있는 다윗(테러리스트)들이 연계해 첨단무기로 무장한 골리앗(미국)을 돌멩이(재래식 무기)만으로 공격하는 일이 가능해졌다”고 설명했다.

자연히 전쟁의 개념도 바뀌었다.

과거 전쟁의 목표는 적국의 군사력을 무너뜨리는 것이었다면 오늘날의 테러는 지도자나 정권을 없애는 데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때와 장소, 대상을 가리지 않는 테러집단에 대항하려면 미리 공격해 화근을 없애야 한다는 ‘선제공격론(Preemptive attack)’과 원하는 타깃만 공격하는 ‘표적 제거(Decapi-tation attack)’가 등장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이호갑기자 gdt@donga.com

박형준기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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