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차차 생각" vs 美 "빨리 증원"…주일미군 강화 신경전

  • 입력 2004년 8월 9일 18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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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미군 병력을 늘려 아시아태평양 및 중동 지역을 총괄하는 사령탑으로 격상시키려는 미국 정부의 계획이 ‘최대 동맹국’인 일본의 미온적인 반응에 부닥쳐 차질을 빚고 있다.

일본 정부는 미국의 요구대로 미군기지 확장을 허용하면 대상지역 주민들의 반발을 감당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난색을 보이고 있다. 최근엔 일본만 고집하지 말고 지리적 요충지인 호주나 필리핀을 검토해 보는 게 어떠냐는 ‘역(逆)제안 카드’를 들고 나오기도 했다.

▽‘시간끌기’ 나선 일본=호소다 히로유키(細田博之) 관방장관은 최근 하워드 베이커 주일 미대사에게 “미군 재편문제는 시간을 갖고 천천히 얘기하자”고 제의했다. 이는 11월 실시되는 미 대통령 선거 이전에 주일미군 재배치 논의를 마무리지으려는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계획을 사실상 거부한 것이라고 외교소식통들은 해석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또 오키나와(沖繩) 주둔 미 해병대 병력의 일부를 호주나 필리핀 등 다른 나라로 이전 배치하는 방안을 미국에 제의할 방침이라고 마이니치신문이 보도했다. 또 일본 본토에 있는 미 해병대 전투기부대의 감축과 미 공군 병력의 괌 이전 등도 요구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정부가 미군기지 확장에 제동을 건 이유는 기지 인근 주민과 지방자치단체의 반발이 워낙 강하기 때문. 미국이 육군 제1군단 사령부의 후보지로 거론한 가나가와(神奈川)현 자마(座間)기지와 오키나와 일대 주민들은 항공기 야간 발착과 사격훈련에 따른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미군기지의 축소 또는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일본 정부의 한 관계자는 “집권 자민당이 참의원 선거에서 패배해 정치적 힘을 잃은 것도 미국의 요구를 100% 들어주지 못하는 요인이 됐다”고 설명했다.

▽곤혹스러운 미국=미국은 주일미군 재편 시나리오가 거의 공개된 상황에서 일본측이 ‘버티기’에 들어가자 난감해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일본측은 지난달 중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양국 실무진이 재배치 협상을 벌일 때만 해도 분명한 반대의사를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일본 정부로서는 주한미군까지 축소되는 마당에 미군을 추가로 받아들이는 ‘아시아 유일’의 국가가 되는 것에 대해 부담을 느끼고 있다고 일본 언론은 전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는 국회 답변에서 “미군 재편 방안은 아이디어 차원일 뿐 공식 제안은 받은 바 없다”고 말했다.

아사히신문은 미일동맹의 성격상 주일미군의 강화가 대세이지만 세계전략 차원에서 동맹관계를 다루려는 미국과 국내 조정을 우선시하는 일본 정부간의 줄다리기는 연말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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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박원재특파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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