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日 축구전쟁]“亞헤게모니 양보는 없다”

  • 입력 2004년 8월 6일 18시 54분


《7일 오후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열리는 2004 아시안컵 결승을 앞두고 중국과 일본의 감정싸움이 일촉즉발로 치닫고 있다.양국 정부는 자제를 촉구하고 있지만 불같이 달아오른 감정대립을 누그러뜨리지는 못하는 양상이다. 양국 역사에 대한 신경전으로 시작된 감정대립은 중국인 해커들의 대일(對日) 사이버 공격으로 확산되는 등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어 ‘축구 전쟁’이 끝난 뒤에도 쉽사리 진정되지 않을 전망이다. 격돌 전야, 중국과 일본 대표팀 감독은 양국 응원단을 향해 “스포츠정신에 따라 행동해 달라”고 호소했다.》

▽중국=중국의 한 네티즌은 “이번 결승전은 단순한 축구경기가 아닌, 결코 질 수 없는 전쟁”이라며 “과거 일본에 점령됐던 베이징에서 또 다시 일본에 진다면 수도에 대한 모독”이라고 말했다.

홍콩 문회보는 6일 중국인 해커 1900여명이 집단으로 일본 총리실과 위생부, 야스쿠니(靖國) 신사 등의 인터넷 홈페이지를 1일부터 5일간 공격했다고 보도했다. 이번 사이버 공격은 지난달 25일 일본인 해커가 양국이 영토분쟁을 빚고 있는 ‘댜오위다오(釣魚島)’ 보호연합회 홈페이지에 침입해 데이터를 훔친 데 대한 보복인 셈이다.

파장이 확산되자 정부가 자제를 촉구하고 나섰다.

쿵취안(孔泉) 외교부 대변인은 4일 자국 축구팬들에게 ‘문명적 관전’을 촉구했다.

또 관영 중국청년보는 ‘우리는 일본을 지켜보지만 세계는 우리를 지켜본다’는 사설에서 “일본이 과거사를 사죄하지 않는다고 우리가 불미스러운 행동을 한다면 세계는 우리를 예의도 없고 스포츠 정신이 결핍된 민족이라고 생각할 것”이라고 전했다.

중국 정부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베이징 궁런(工人)경기장에 6000여명의 경찰과 인민해방군을 배치했다. 경찰 1000여명은 일본 관중 2000여명을 중국 관중과 격리해 에워쌀 예정이다.

결승전 입장권은 동난 상태. 200위안(약 3만원)짜리 일반석 입장권 4만3000장은 판매 첫날인 4일 모두 팔렸고 암표상들은 이를 판매가의 4배인 800위안(약 12만원)에 거래했다.

▽일본=일본 정부와 언론은 중국인의 반응을 중국에 체류 중인 일본인 전체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주중 일본대사관은 인터넷 홈페이지에 “경기장 밖에서는 일본 유니폼을 입지 말라”는 등 주의를 당부했다.

일본 언론들은 이번 사태에 불만을 나타내기도 했다. 마이니치신문은 6일 중국 관중의 일본선수에 대한 야유를 ‘반일교육과 애국주의 교육의 산물’이라고 해석했다. 이번 사태의 원인을 중국의 ‘배타적 민족주의’ 때문이라고 지적한 것.

일본 정부는 폭력사태를 우려해 정부나 중국 축구팬을 직접 겨냥한 자극적 표현은 삼가고 있지만 정치권에서는 불만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5일 집권 자민당 의원들의 모임에서는 “이번 사건은 중국 정부의 반일교육의 영향” “불상사가 일어나면 전쟁 후 쌓아 온 양국의 우호관계가 원점으로 돌아간다”는 등 강경 발언이 이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뜨거운 장외 대결은 양 팀 감독에게 더없이 큰 부담.

네덜란드 출신 아리 한 중국 대표팀 감독은 기자회견에서 “우리가 축구 경기장에 가는 이유는 즐기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고, 브라질 출신의 지코 일본 대표팀 감독은 “축구는 평화의 상징”이라며 양국 국민의 성숙한 응원전을 주문했다.

베이징=황유성특파원 yshwang@donga.com

도쿄=조헌주특파원 hans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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