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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5월 12일 19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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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광주의 참상을 가장 먼저 전 세계에 알린 독일 제1공영방송(ARD-NDR)의 전 일본 특파원 위르겐 힌츠페터(67)가 독일의 병상에서 광주 시민들에게 메시지를 보내 왔다.
심장질환으로 쓰러져 병원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으면서 “내가 죽으면 광주에 묻어 달라”고 유언했던 그는 위험한 고비를 넘긴 뒤 부인을 통해 “나를 잊지 않고 받아준 시민들께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본보 7일자 A25면 참조
11일 오후 힌츠페터씨의 부인 프람스티트 에렐트라우트(67)와 국제전화를 한 5·18기념재단 김찬호 총무차장은 “4주 동안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은 뒤 상태가 호전돼 일반병실로 옮겨졌으며 한국의 언론보도 내용을 듣고 무척 기뻐했다고 부인이 말했다”고 전했다.
김 차장에 따르면 힌츠페터씨는 “내가 죽으면 광주의 학생들이 잠들어 있는 국립 5·18묘지에 함께 묻어주고 만약 외국인이라서 묻힐 수 없다면 부디 이름이 새겨진 비석이라도 학생들이 잠들어 있는 한쪽에 세워 달라”고 말했다는 것.
하지만 힌츠페터씨의 사후 광주 안장은 쉽지만은 않을 전망이다. 부인 등 가족들이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 차장은 “가족들은 그가 사망하면 독일 풍습대로 가족묘에 안장할 것이라는 뜻을 밝혔다”며 “그렇게 될 경우 광주에 머리카락 등 신체 일부와 카메라, 취재수첩, 당시 사진 원본 등 유품을 보내주도록 요청했다”고 말했다.
힌츠페터씨의 광주 안장은 어렵게 됐지만 이와 별개로 그를 5·18민주화운동 유공자로 지정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국무총리실은 광주시가 현재 추가 신청을 받고 있는 민주화유공자 5차 보상심의에서 힌츠페터씨를 ‘기타 희생자’로 인정하면 국가유공자 지정이 가능해 국립 5·18묘지에 안장할 수 있다는 뜻을 5·18기념재단에 전달했다.
이에 따라 재단측은 총리실 입장을 광주시에 전달하는 한편 힌츠페터씨가 5차 보상심의에서 국가유공자로 인정될 수 있는 근거자료 수집에 들어갔다.
차명석(車明錫) 5·18기념재단 상임이사는 “그가 80년 당시 죽음을 무릅쓰고 광주 참상을 외국에 알린 것은 명백한 사실”이라며 “86년 취재 도중 목과 척추에 중상을 입은 서울 광화문 시위가 5·18 관련 시위였는지도 조사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광주=정승호기자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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