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동아 당선작 이경숙의 ‘475번 도로위에서’출간

  • 입력 2004년 4월 5일 18시 44분


올해 여성동아 장편공모 당선자인 재미교포 이경숙 씨. “새벽에 당선소식을 들었어요. 잠을 이룰 수 없더군요. 로스앤젤레스에 사는 딸은 제 전화를 받자 마자 ‘아! 당선됐구나’ 하고 말했어요. 저만큼 골똘하게 생각했던 모양이지요.”   -동아일보 자료사진
올해 여성동아 장편공모 당선자인 재미교포 이경숙 씨. “새벽에 당선소식을 들었어요. 잠을 이룰 수 없더군요. 로스앤젤레스에 사는 딸은 제 전화를 받자 마자 ‘아! 당선됐구나’ 하고 말했어요. 저만큼 골똘하게 생각했던 모양이지요.” -동아일보 자료사진
올해 ‘여성동아 장편 공모’ 당선작 ‘475번 도로 위에서’(동아일보사 간)가 출간됐다. 저자는 재미교포 이경숙씨(54). 이씨는 1975년 유학에 나선 남편과 함께 미국으로 갔다가 미국 중동부 오하이오주 톨리도에 정착해 30년째 살고 있다. 늦게 소설 쓰기를 시작해 지난해에는 미주 한국일보문학상 단편부문에 당선하기도 했다.

그의 첫 장편인 ‘475번…’은 작가를 떠올리게 하는 나이 지긋한 교포 여성 서경을 중심인물로 한국인 이민자들의 삶이 색색의 유리구슬처럼 묘사된다. 심사를 한 소설가 이남희씨는 “이민자 내부 시선으로 쓴 집합적 자서전이라 할 만하다”고 평했다.

한국에서 기자로 일했던 작가는 톨리도에서 가발 가게를 하며 1남1녀를 키웠는데, 작품 속의 서경은 옷가게를 하면서 역시 1남1녀를 키운다.

서경의 가게에는 가끔 ‘크로스 드레서’라는 이들이 찾아와 그녀를 놀라게 한다. 여자로 분장하길 좋아해서 여자 옷을 주로 사는 남자들이다.

작품은 독실한 기독교도인 서경의 남편이 전미(全美) 교인대회에 나가 ‘레즈비언과 게이들을 목사로 받아들일 건가’를 놓고 격론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서경은 대학생 아들 윤수의 빨랫감 속에 여성 팬티가 섞인 걸 보고 불안해 하는데, 어느 날 울먹거리는 백인 이웃 낸시에게서 “내 아들 피터와 윤수가 아마 게이인 것 같다”는 말을 듣는다. “아아, 옆집 정섭이가 여자 아이를 임신시켰다고 난리가 났을 때도 나는 모범생 아들을 둬서 뿌듯하기만 했는데….” 결국 두 여자는 게이바로 숨어든다. 거기는 이들의 두 아들이 ‘쇼걸’로 나오는 곳이다.

서경의 주변에는 교포사회의 단면이 만화경처럼 지나간다. 교인들이 세금 내라고 준 돈으로 사택의 가구를 사서 방출 위기에 처한 목사, 정신발작을 일으키는 첫 부인과 헤어지고 미국으로 왔지만 백인인 두 번째 부인이 김치에 질겁해 파국을 걱정하는 미스터 홍, 아내 등쌀에 한인회장을 맡았지만 ‘가방 끈 긴 교포들’과 토론만 하면 싸늘한 냉소에 분기가 치밀어 오르는 장씨 등이 그들이다.

작가는 서경과 어릴 적 단짝이었다가 미국에서 조우한 ‘현이’를 연민 가득한 눈으로 바라본다. 현이의 남편은 서경의 옛 사랑이었다. 그는 친척이 파산하자 함께 빚더미에 앉았다가 미국으로 건너와 적성에도 안 맞는 중국식당 주방보조로 ‘기름 냄새에 몸서리칠 만큼’ 일한다. 결국 톨리도에 정착해 세탁소를 안정적으로 꾸려 가던 중 위암에 걸리고 만다. 현이 가족은 의료보험에 가입하지 않아 막대한 의료비를 뒤집어쓰는데, ‘현이 남편’은 끝내 죽음이 다가오자 가족들을 ‘의료 빚’에서 구해내기 위해 아내에게 눈물로 이혼을 요구한다.

밀도가 떨어지는 대목들이 있지만 작가는 교포사회를 미화하지도, 비난하지도 않는다. 숨 가쁘게, 때론 담담하게 포착한 단면들로 ‘이야기가 있는 사진첩’을 만들고 있다. 작가는 당선 소감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

“앞으로 좋은 글을 쓴다면 출판사에 다니는 딸이 영어로 번역해 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내 아들은 게이가 아니에요. 여자 친구도 있거든요….”

권기태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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