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대사관 ‘이상한 비자발급’…탈북자에 호적등본 요구

  • 입력 2004년 3월 1일 19시 07분


《한국주재 중국대사관이 2월 초부터 중국을 방문하려는 탈북자들에게 북한 거주지와 가족 관계, 중국 내 친인척 신상, 탈북 경로와 방문 목적 등 공안기관의 수사를 방불케 하는 조사를 벌여 탈북자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중국측의 이 같은 조치로 국내에선 비밀로 분류된 탈북자들의 신상 정보가 고스란히 중국으로 넘어가고 있다.

국내에서 탈북자들은 행정종합전산망으로는 신원조회가 불가능할 정도로 인적사항이 비밀로 분류돼 있으며 국가정보원 등 일부 관련 기관만 신상 정보를 열람할 수 있다.

최근 중국 비자를 신청한 탈북자 A씨는 “중국대사관 직원이 북한에서 살던 주소 등 인적 사항을 상세히 물었다”면서 “중국에 건너가 가족을 만날 경우 중국 공안이 나를 체포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말했다. A씨는 중국에 가는 것을 포기해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관광업계는 중국측이 2월 초부터 단수여권 소지자들에게 호적등본 제출을 요구하고 있으며 이 중 원적지가 북한으로 되어 있는 탈북자에게 개별 면담을 요구해 방문 목적과 탈북 경로 등을 구체적으로 조사하고 있다고 전했다.

M여행사 최모 과장(32)은 “관광비자를 포함해 비자를 발급하면서 호적등본을 요구하는 국가는 중국뿐”이라며 “단수여권 소지자의 원적지가 한국이면 중국측은 별도 조사 없이 바로 비자를 발급한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 거주기간이 5년 미만인 탈북자는 자유롭게 해외로 출입국할 수 있는 일반 복수여권(유효기간 5년)이 아닌 외국에 한번만 다녀오면 자동 폐기되는 단수여권을 발급받고 있다

중국 대사관측의 이 같은 조치로 중국에 남아 있는 가족을 만나기 위해 중국에 가려는 탈북자들에게 ‘제동’이 걸렸다.

탈북자 지원단체들은 “탈북자들의 신원이 노출되면 중국에 있는 가족들의 안전마저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이 큰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들 단체에 따르면 실제 중국을 방문했다가 중국 공안에 체포된 탈북자들이 적지 않으며 북한으로 다시 끌려간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탈북자동지회 김성민(金聖玟) 사무국장은 “정부가 중국대사관측의 이러한 조치를 묵인하고 있는 것은 탈북자들을 보호하지 않겠다는 차원을 넘어 중국 공안에 협조하는 것”이라며 강하게 불만을 토로했다.

외교통상부는 이에 대해 “중국대사관이 호적등본을 요구하는 것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며 “비자 발급과 관련된 문제는 각국의 소관 사항”이라고 말했다.

주한 중국대사관 영사부 담당직원은 “중국 정부는 비자 발급 문제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힐 의무가 없다”며 이번 조치에 대한 설명을 거부했다.

길진균기자 leo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