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유일한 한국계 하원의원 류보미르 장

  • 입력 2003년 12월 31일 17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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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을 대표한다는 생각으로 양국관계의 발전뿐만 아니라 한반도 안정에도 기여하겠습니다.”

지난해 12월 29일 개원한 4대 러시아연방 하원의원 450명 중 유일한 한국계(고려인)인 류보미르 장 의원(44·사진)의 다짐은 다부지다.

그는 지난해 12월 7일 총선에서 러시아 제3의 도시 니주니노보고로드(옛 고리키)에서 여당인 통합러시아당 후보로 당선됐다. 한인 연방의원은 유리 정(이르쿠츠크·3선·사망), 발렌틴 최 의원(하바로프스크·초선·정계 은퇴)에 이어 세 번째.

한인 4세로 우즈베키스탄에서 태어난 장 의원은 소수민족에 대한 차별을 이기고 사업가로 성공한 뒤 다시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장 의원은 1991년 사유화 과정에서 국영 제분공장을 인수해 린덱사(社)를 세우며 사업을 시작했다. 아버지(장린덕)의 이름을 딴 린덱은 현재 3개의 제분공장과 2개의 제빵공장을 거느리며 니주니노보고로드 밀가루시장의 90%를 장악하고 있다.

사업가로 성공한 뒤에는 적극적인 봉사활동으로 두 차례 주의원을 지내며 정치적 야망을 키웠다. 그는 “한인이라는 사실을 감추기보다는 당당한 자세로 선거에 임했다”고 말했다. 지역구 유권자 6만8000여명 중 고려인은 500명 정도.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러시아계 유권자의 지지를 끌어낸 것은 그의 탄탄한 지역 기반을 보여 준다.

하지만 어린시절은 방황과 좌절의 나날이었다. 그의 부모는 대부분의 한인처럼 협동농장에서 일했다. 가난과 ‘카레예츠(한국인)’라는 놀림이 싫었던 그는 일찍 고향을 떠나 카자흐스탄과 러시아를 떠돌았다. 농장 노동자, 노점상, 거리의 마술사 등 안 해 본 일이 없다. 우여곡절 끝에 카잔에서 건축기술대를 졸업한 뒤 80년 말 자동차 1대를 가지고 택시운전을 하면서 사업 기반을 마련했다.

그는 지난해 2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하는 등 한국을 7차례 방문했고 북한도 한번 다녀오는 등 자신의 뿌리에 관심이 많다. “북한에 갔을 때는 주민들의 비참한 생활상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고도 했다.

장 의원은 “소수민족 출신으로 정치인으로 성장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면서도 “언젠가는 러시아에서 한인 장관이 탄생할 날이 올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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