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진 日 외교관 "방탄복 입고 어떻게 마음 통하겠나"

  • 입력 2003년 12월 1일 15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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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복을 입고 이라크인들을 대해서야 어떻게 그들과 마음이 통하겠는가."

지난달 29일 이라크 북부 티크리트에서 괴한의 소총 공격을 받고 숨진 오쿠 가쓰히코(奧克彦·45) 영국 주재 일본대사관 참사관은 평소 이렇게 말하며 방탄복 착용을 거부해왔다.

그는 이라크 연합군임시기구(CPA) 일본대표로 4월 장기출장 형식으로 영국을 떠나 이라크에 파견된 뒤 몸을 아끼지 않고 활동해왔다. '현장'을 고집해온 한 열혈 외교관의 죽음에 일본 사회는 침통해 하고 있다.

1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오쿠 참사관은 효고(兵庫)현 출신으로 중학생 때에는 야구선수로 홈런타자였으며 고교와 와세다(早稻田)대학 정경학부 시절에는 럭비 선수로 활약했다. 외무성 관료가 된 직후 연수를 했던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는 일본인 최초의 옥스퍼드대 럭비팀 정규 선수로 활약했다.

"그는 행동력이 뛰어난 '나이스 가이(nice guy)'였다. 아무리 힘든 일을 맡겨도 결코 활력을 잃는 법이 없었다."

외무성 본부에서 국제경제과장, 유엔정책과장 등을 거치는 동안 그를 지켜본 한 전직 차관은 국제 정치의 그늘에서 무참히 희생된 유능했던 후배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그는 "나는 외무성 '체육계' 소속"이라고 했다. 책상머리에서 다 해결하는 관료사회 풍토에 불만을 가진 그는 현장을 눈으로 보지 않고는 못 배기는 성격이었다.

8개월여의 이라크 활동 기간중 그는 바그다드에서 자동차로 4시간 걸리는 남부 사와라를 수차례 답사하며 치안사정 등을 세밀히 조사, 일본 정부에 보고했다. 그 결과 일본 정부는 이곳을 자위대의 파병 지역으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쿠 참사관과 함께 피살된 이노우에 마사모리(井上正盛.·30)서기관은 96년 외무 관료가 된 뒤 7년 이상 중동 지역에서 근무해온 아랍어 전문가였다. 지난해 11월부터 이라크 대사관에서 근무해왔으며 오쿠 참사관과 단짝을 이뤄 활동해왔다. 숨진 날도 티크리트에서 열릴 예정이던 이라크 재건회의에 참석하는 오쿠 참사관의 통역으로 수행중이었다.

도쿄=조헌주특파원 hans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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