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통째로 바꾼다…영미의료진, 내년초 시행계획 밝혀

  • 입력 2003년 11월 30일 17시 47분


《영국과 미국의 성형외과 의사들이 얼굴이식 수술을 서두르고 있어 화제다. 흥미롭게도 1997년 개봉된 할리우드 영화 ‘페이스 오프(Face Off)’에서 등장한 수술과 비슷하다. 미 연방수사국(FBI) 형사(존 트래볼타 분)가 임무수행을 위해 테러리스트(니컬러스 케이지 분)의 얼굴을 감쪽같이 이식받는 내용. 그런데 영화 속 얘기인 줄만 알았던 얼굴이식이 내년 초에는 시행될지 모른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미 기술적인 준비는 마쳤다고 하는데 과연 가능할까.》

지난달 10일 영국 일간지 ‘이브닝 스탠더드’ 인터넷판은 영국과 미국의 의료진이 영국인 10명을 대상으로 내년 초 죽은 사람의 얼굴을 통째로 이식하는 수술을 시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후 얼굴이식의 가능성과 그 여파에 대한 보도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영국 왕립자유병원 성형외과의 피터 버틀러는 “얼굴성형을 위한 미세절제술이 이미 완비됐다”고 자신감을 표했다. 미국 켄터키 루이스빌대 성형외과의 존 바커 역시 “영국보다 앞서 최초로 얼굴이식 수술을 수행할 준비를 마쳤다”고 말했다. 병원의 승인이 나면 생전에 얼굴 제공을 약속한 환자가 사망한 지 24시간 내 피부를 벗겨내 수술을 시행할 예정이다.

신장이나 간을 이식한다는 말은 들어봤는데 얼굴은 어떻게 이식한다는 것일까.


얼굴이식이란 죽은 자의 얼굴에서 피부와 피하지방층(영국팀)은 물론 신경과 근육(미국팀)까지 떼어내 이를 환자의 얼굴 속살에 붙이는 일이다. 의료진의 목표는 화상을 입거나 교통사고를 당해 얼굴이 심하게 손상된 환자를 치료하는 일. 자신의 신체 일부로 이식하기에는 상처가 매우 심각한 경우다. 수술받는 사람의 골격은 거의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에 영화 ‘페이스 오프’에서처럼 다른 사람과 똑같은 얼굴로 뒤바뀌는 일은 없다.

의료진은 얼굴이식이 잘린 손가락을 잇는 일보다 쉽다고 장담한다. 이유는 혈관이 굵기 때문. 손가락의 혈관은 지름이 2mm인 데 비해 얼굴의 경우 3.5mm 정도라 찾아서 연결하기 쉽다.

또 삼성의료원 성형외과 오갑성 교수는 “얼굴은 몸에서 혈관이 가장 풍부하게 분포하는 부위”라며 “그만큼 회복력이 왕성해 꿰맸을 때 아무는 시간이 비교적 짧다”고 말했다.

지난달 19일 BBC 인터넷판에 따르면 실제로 개와 쥐의 경우 얼굴이식에 성공했다는 보고가 있다. 미국의 한 의사는 죽은 자의 얼굴을 죽은 자에게 이식한 적이 있다.

물론 얼굴의 가장 큰 매력인 표정연출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얼굴에는 모두 44개의 근육이 있는데, 이 중 음식 씹는 동작을 도와주는 근육은 4개뿐이다. 무려 40개의 근육이 인간의 풍부한 표정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근육의 움직임을 조절하는 무수한 신경이 곳곳에 숨어있다. 안면신경이 마비됐거나 근육이 손상된 환자는 얼굴이식을 시도했을 때 표정을 짓는 데 큰 한계가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려되는 점은 면역거부반응. 오 교수는 “신체에서 가장 거부반응이 큰 장기가 피부”라며 “확실한 치료제가 나오지 않는 이상 이식된 환자에게 치명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영국 왕립외과대 의료진은 “수술할 경우 6주 이내에 환자의 10%는 거부반응으로 당장 고통을 당할 것이며 1년 뒤에는 절반 이상이 만성 거부반응에 시달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를 피하기 위해 강력한 거부억제제를 사용해야 하지만 심장병이나 암 발생 위험이 커질 수 있다.

얼굴 기증자 가족이 겪을 심리적 충격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남편을 떠나보낸 후 비슷한 얼굴의 남성과 우연히 마주쳤을 때 혼란감이 얼마나 클까.

사실 영국의 버틀러씨는 지난해 12월에도 얼굴이식 수술을 시행하겠다고 밝혀 화제가 되었다. 그런데 막상 얼굴을 제공하겠다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다. 다양한 반대 의견 때문에 병원의 승인도 나지 않았다. 하지만 버틀러씨는 “기존의 기술로 성형이 불가능한 환자들이 더 이상 음지에서 불행하게 살지 않게 해야 한다”며 수술불가피론을 굽히지 않고 있다.

김훈기 동아사이언스기자 wolf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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