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방형남칼럼]‘부시 재선’ 도박

  • 입력 2003년 10월 29일 18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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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민치고 요즘 신문을 보며 눈앞이 캄캄해지지 않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자고나면 더 고약한 비밀이 터지는 판이니 ‘내일은 좋아진다’는 기대도 하기 어렵다.

누구 한 사람 정신 차린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니 내우(內憂)의 시대가 분명하다. 그래도 나라가 망하기를 바라는 정신 나간 국민은 없을 것이다.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국가라는 거대조직의 자정(自淨)작용을 기대하는 것이 보통 국민의 마음이 아닐까. 기적적으로 사태가 수습되기를 바랄 뿐이다.

내우의 시대에 반드시 피해야 할 적이 있다. 외환(外患)의 멍에까지 쓰게 되면 나라의 장래는 정말 암울해진다. 만국(萬國)에 대한 만국의 투쟁이 얽히는 국제무대에서 자정작용이나 이성을 기대할 수는 없다. “혼란스러운 국내 사정을 살펴 달라”는 엄살 또한 통하지 않는다.

▼外患은 막아야 ▼

걱정스럽게도 한미관계와 북핵 문제 속에 외환의 가능성이 잠복해 있다. 두 가지 모두 미국 대선의 향방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니 몸통은 둘이되 뿌리는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미국 대통령선거는 내년 11월에 실시되지만 사실상 내년 1월의 뉴햄프셔주 예비선거와 아이오와주 코커스로 시작된다. 불과 3개월 뒤의 일이다. 강 건너 불이라고 할 수도 없다. 미국 대선 결과가 한반도에 직간접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는 건 이미 입증된 사실이다.

3년 전 미국의 집권당이 민주당에서 공화당으로 바뀌었을 때 우리는 얼마나 허둥댔던가. 갓 취임한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냉랭했던 워싱턴 정상회담의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다.

문제는 두 나라 대통령의 임기 차이에서 비롯된다. 한국은 5년 단임, 미국은 4년에 중임이 가능하기 때문에 동시에 새 정부가 출범하는 경우는 드물다. 양국이 개헌을 하지 않는 한 2012년이나 돼야 동시에 대통령선거가 실시된다. 재신임 국민투표가 실시되고 노무현 대통령의 신임이 거부되지 않는 한 양국 정부의 엇갈림은 피할 수 없다.

미국에 새 정부가 들어서면 한국은 덩달아 바쁘다. 새 정부의 인맥을 찾기 위해, 새 한반도정책을 파악하기 위해 애를 쓰지만 초기 성과는 언제나 신통치 않다. 시행착오를 거쳐 어렵사리 미국의 새 정부와 정책을 파악하는 것이 그동안의 관례였다. 미국의 한반도정책이 확정되면 이번에는 새로 출범한 한국 정부와의 조율이 기다린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 이후 나타났던 엇박자는 한미관계에 얼마나 큰 흠집을 냈던가.

이번에는 슬기롭게 엇박자를 극복해야 한다. 외환만은 막겠다는 결연한 자세가 필요하다. 그러자면 미 대선에 대한 판단이 정확해야 한다. 유능한 정부라면 적어도 1년은 내다보면서 움직여야 한다.

김 전 대통령에게 ‘this man’이라는 호칭을 사용했던 부시 대통령이 최근 노 대통령을 ‘친구’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지난주 정상회담 때는 노 대통령을 ‘미국의 친구이자 나의 친구’라고 부르며 너스레를 떨었다. 2년 전 ‘this man에서 my friend로’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우리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의 친구가 되기를 기대했던 필자의 소망이 이루어지기는 했지만 마냥 기쁘지만은 않다.

▼this man에서 my friend로 ▼

부시의 의도가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부시에게는 이라크 파병 결정이 참으로 고마웠을 것이다. 미국의 대(對)이라크 정책을 분명하게 지지한 한국은 재선에 나서는 부시를 지원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노 대통령은 친구가 아니라 구원자라는 말을 들어도 부족하지 않다.

부시가 변한 배경분석은 그 정도면 족하다. 중요한 건 미국 대통령의 변화를 활용하는 전략이다. 우리가 부시의 가장 큰 골칫거리인 이라크 문제 해결을 위해 화끈하게 나섰는데 그가 재선에 성공하면 왜 논공행상이 없겠는가. 한미관계에서 끌려가는 대신 주도적인 목소리를 낼만하지 않은가. 이라크 파병은 부시의 아킬레스건을 잡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북핵 문제, 주한미군 재배치 등 현안 해결 과정에서 우리의 입장을 관철할 호기를 살려야 한다.

외교는 주고받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을 하는 주역은 대통령이다. 불안한 조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세는 부시의 승리 쪽으로 기울고 있다. 어차피 ‘도박’이라면 유리한 쪽에 거는 법이다.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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