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스 이겼다" 환호의 베이징

  • 입력 2003년 6월 25일 15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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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겼다(我們j倆?!', '베이징은 굳건하다(北京眞牛)!'

24일 베이징의 최대 번화가인 왕푸징(王府井). 세계보건기구(WHO)가 두달 만에 베이징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감염지역에서 해제한다는 TV 기자회견에 상인들은 환호성과 함께 자축 플래카드를 들고 거리로 나와 시민들과 기쁨을 나눴다.

이날 밤 외국 대사관들이 밀집한 차오양(朝陽)구 싼리툰(三里屯)의 고급 레스토랑에는 젊은이들이 맥주잔을 부딪치며 그동안 밀린 얘기를 나눴고 음식점들은 새벽까지 영업을 계속했다.

축소 보고로 국가적 신인도가 추락했고 경제적 피해도 엄청났지만 이번 재앙이 2008년 올림픽을 앞두고 행정의 투명성 제고, 위생 습관의 개선 등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것이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달라진 풍속=인터넷 통신회사인 중궈왕퉁(中國網通)은 지난 주 위탁 연수기관인 런중런퉈(人衆人拓)공사에 직원 1200여명의 연수를 계획했다. 절벽에서 외줄타기 등 유격을 방불케 하는 내용도 있지만 대부분의 연수 프로그램은 줄당기기, 단체구기, 상하 직원간의 자유토론 등으로 짜여졌다.

쑨위릭(孫宇力) 런중런퉈공사 책임자는 "과거 연수 프로그램이 기업체의 목표 달성에 중점을 두었다면 사스 이후에는 회사 내부의 단결과 협동심 배양, 자신감 회복, 건강한 신체 등으로 내용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사스는 3000여년간 계속되어온 중국의 식생활에도 큰 변화를 몰고 왔다. 요리 하나를 두고 각자의 수저로 떠먹던 전통적 합찬제(合餐制)가 공용 수저 또는 개인 접시에 음식을 따로 담아주는 분찬제(分餐制)로 바뀌었다.

중국의 연회상이 10명 이상 앉는 것을 감안한다면 식당 입장에서 분찬제는 주방과 서비스 인원의 증가, 식기 준비 등으로 원가가 30% 정도 늘어나지만 시민들의 분찬제 선호로 조금씩 정착돼 가는 분위기다.

분찬제에서 보듯 위생 관념과 보건 의식이 높아진 것도 큰 소득이다. 아무 곳에나 침을 뱉거나 쓰레기를 버리고 배설을 하던 악습이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고, 주방과 화장실은 물론 집 주변을 청소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사스 기간중 술집, 가라오케, 가무청(歌舞廳), PC방 등이 일제히 문을 닫아 가족간 대화 시간이 늘어나 가정 화목의 계기를 만든 것도 반사이익이다.

한편 한국인이 한 명도 사스에 감염되지 않은 것은 김치 때문이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김치 소비가 크게 늘어났다.

정운용(鄭雲溶) 농수산물 유통공사 베이징관장은 "사스 이전에는 베이징의 유통매장 카르푸에서 하루 10봉지(500g 한 봉지에 20위안·약 3000원) 정도 나가던 김치가 지금은 하루 평균 150봉지 씩 나가는 등 폭발적 인기를 끌고 있다"고 말했다.

▽밀린 일 처리하기=베이징 출입국관리국에는 25일 500여명의 비자 신청자로 북새통을 이뤘다. 중국이 사스 감염지역에서 해제되면서 해외 여행을 미뤘던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든 탓이다.

출입국관리국 관계자는 "사스가 한창일 때는 비자 신청자가 하루 2,3명에 지나지 않았다"면서 "해외 여행이나 친지 방문, 유학생들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상하이(上海)의 경우 7월부터 연말까지 117건의 대규모 국제전시회가 열린다. 지난해 동기 대비 64% 늘어난 수준으로 매일 한건 이상 열리는 셈. 사스 파문으로 상반기에 열릴 예정이던 전시회가 하반기에 집중됐기 때문이다.

또 4월 말 이후 취소됐던 각종 문화행사들이 몰리면서 다음달 말까지 공연과 콘서트 등 문화행사가 300건 예정돼 있다. 사스 때문에 결혼을 미뤘던 커플들의 결혼 예약도 폭주하면서 올 가을 사상 최대의 결혼 특수를 맞게될 전망이다.

▽정치, 경제적 영향=마오쩌둥(毛澤東) 이후 중국 지도부가 매년 여름 휴양지인 베이다이허(北戴河)에서 개최해온 중앙공작회의가 올해는 베이징에서 열린다. 사스로 고통받아온 인민들을 고려한 조치라는게 홍콩경제일보의 분석이다.

사스는 당초 약체로 여겨졌던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과 원자바오(溫家寶) 총리 등 제4세대 지도부에 힘을 실어주는 계기가 됐다.

사스 은폐, 축소를 과감히 시인하고 사스와의 전쟁 최일선에 나선 새 지도부는 현장 시찰 등으로 인민과 함께 한다는 이미지를 심으면서 신속한 사스 퇴치로 민심을 얻었다.

또 사스 기간중 업무를 소홀히 한 중고위급 간부 1000여명을 해임하고 간부들의 책임감을 강조함으로써 행정의 투명성을 높이는 효과도 거뒀다.

당초 8%대를 목표로 했던 경제성장률은 7%대로 하향 수정됐다. 가장 큰 문제는 실업. 관광, 호텔, 음식점, 건설업 등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면서 전체 5000만명의 종사자 중 5~10%가 일자리를 잃었다. 도시 전체 실업자가 공식적으로 2400만명인 것을 감안하면 사스 후유증으로 실업자는 3000만명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이는 농촌 실업자 1억5000만명을 감안하지 않은 숫자다.

베이징=황유성특파원 ys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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