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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3년 4월 24일 16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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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안 차량 2대가 배치돼 베이징 진출입 차량들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는 이 곳에는 평소 화물차 등으로 늘 붐비던 모습과는 달리 승용차 몇 대만이 드문드문 지나다닐 뿐 적막감과 긴장감이 감돌았다.
조금 뒤 베이징 셴다이청(現代城)∼허베이 산허(三河)시간 930번 노선 버스에서 승객들이 내려 톨게이트 건너편의 '지(冀·허베이성 소속)' 자 번호판을 20여대의 택시들에 올라탔고, 버스는 곧바로 방향을 바꿔 베이징으로 되돌아가는 기이한 풍경이 목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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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마스크를 쓴 톨게이트 여직원은 "이번 주부터 베이징과 허베이를 잇는 노선버스의 진출입을 통제해 승객들이 중간에서 갈아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면서 베이징은 사실상 외부와 격리 상태에 들어갔다. 하지만 시 자체를 전면 봉쇄할 경우 물자 수급에 차질을 빚는 등 시민 기초생활이 전면 마비되기 때문에 사전허가를 받은 차량은 통과시키는 등 부분 봉쇄 조치를 취하고 있다.
베이징에서는 사스 상황이 하루가 다르게 악화되면서 극심한 사재기 현상이 빚어지는 등 시민들이 심리적 공황 상태에 빠졌다.
평소 한산한 시간인 이날 오전 10시반경 왕징(望京) 쇼핑센터 주차장에는 생필품을 사러나온 시민들로 주차장에 차를 댈 수 없을 정도였다.
매장에는 쌀 밀가루 라면 우유 만두 등이 진열된 곳이 텅 비어 있었으며, 바닥에는 창고에 쌓아두었던 물건들을 모두 꺼낸 듯 빈 박스가 곳곳에 널려 있었다.
이곳 점원 왕젠핑(王建平)씨는 "시 당국이 일반 재래시장 대부분을 25일부터 폐쇄하고 쇼핑센터를 이용토록 하면서 물건을 사러 나온 시민들이 평소보다 3배 이상 늘었다"면서 "채소 등 일부 품목은 최고 50%까지 가격이 치솟았다"고 밝혔다.
한국 교민들이 많이 찾는 왕징 낙원상가에는 김치를 찾는 중국인들로 때 아닌 호황을 누리고 있다. 이 곳의 조선족 점원은 "23일 저녁 김치 100포기를 담았는데 24일 오전에 이미 동이 났다"면서 "김치와 마늘, 파 등이 사스에 면역력이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김치를 찾는 중국인들이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시민들이 사스 감염을 우려해 외출을 삼가고 있고 거리를 오가는 시민들도 80% 이상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 택시들도 손님이 줄어들자 '소독 차량'이라는 스티커를 부치고 다니는 경우가 많다.
시민들이 공공장소 출입을 삼가면서 문을 닫는 식당과 유흥업소들도 늘고 있다. P, S, J 등 대형 한국식당과 유흥업소도 24일부터 무기한 영업 중지에 들어갔다.
사스와 관련한 확인되지 않는 소문이 기세를 떨치면서 시민들의 불안감을 더욱 확산시키고 있다. "사스 의심환자로 판명되면 진짜 환자와 한묶음으로 수용시설에 격리돼 죽든지 살던지 치료도 해주지 않는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시민들이 웬만큼 아프지 않으면 아예 병원에 가지 않으려 하고 있다.
또 "의료시설과 의료인력 부족으로 다음주부터 베이징이 통제불능 상태에 빠진다" "당국이 계엄 선포를 검토하고 있다"는 등의 소문들이 나돌면서 시민들을 더욱 위축시키고 있다. 왕(王)씨 성의 한 택시기사는 "지금 상황이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 때보다 더욱 심각한 것 같다"면서 "중국이 총체적인 국가 위기에 빠졌다"고 탄식했다.
베이징=황유성특파원 ys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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