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독의 동독 지원방식은

  • 입력 2003년 2월 5일 01시 40분


정부는 대북지원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서독도 동독에 많은 지원을 했지만 문제가 되지 않았다”는 주장을 전가의 보도(寶刀)처럼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서독이 동독을 지원한 방식은 우리와 전혀 다르다. 서독은 오히려 분단 기간에 철저한 상호주의에 입각해 지원규모와 절차를 투명하게 밝혔기 때문에 우리 정부처럼 몰래 지원했다가 문제가 된 경우는 없었다.

동서독 기본조약이 체결된 1972년부터 통일된 1990년까지 서독이 동독에 지원한 총액은 1044억5000만마르크(통일 당시 약 61조원)에 이른다. 이 가운데 서독주민이 동독주민에게 제공한 현금과 각종 선물이 748억마르크, 정부차원에서 지원한 액수는 296억5000만마르크다.

그러나 서독이 동독에 준 것은 현금이 아니고 주로 물자지원이었다. 동독 정권이 서독의 지원물자를 체제유지에 쓰지 못하도록 하면서 동독주민에게 직접적인 혜택을 주기 위한 안전장치였다. 정부차원의 지원은 고속도로 통행료, 교역지원비, 동독주민의 서독방문 환영금 등으로 제한했다.

물론 서독이 비밀에 부쳤던 동독 지원사례도 없지는 않다.

이 경우도 동독의 정치범을 석방하기 위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으로 한정했다. 서독은 1963년부터 통일될 때까지 정치범이나 서독으로 탈출하려다 실패한 3만3755명의 동독인을 서독으로 이주시켰다.

서독 정부는 이 과정에서 동독에 지원을 하면서도 철저한 상호주의 정신에 따라 동독의 인권개선을 요구하는 한편, 군사적 위협 감소를 위해 동독이 국경에 설치한 자동발사장치(총기류)를 제거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또 현금을 지원할 경우에는 반드시 중앙은행을 거치도록 함으로써 ‘뒷돈’ 거래의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없앴다.

특히 서독은 비밀 지원을 할 수밖에 없는 경우에는 여야 합의를 거치도록 했기 때문에 비록 정권이 교체되더라도 동독지원은 꾸준하게 진행됐다. 이처럼 투명하면서도 지속적인 지원방식이 동독의 체제와 지도부의 인식을 바꿀 수 있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김영식기자 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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