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은행 “돈 빌려가면 이자 드려요”

  • 입력 2003년 2월 3일 18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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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억엔을 하루동안 빌려드림. 돈을 빌려 가시면 연 0.01%의 이자를 얹어드림.”

지난달 말 일본 도쿄의 유럽계 A은행은 금융기관간 거래되는 초단기자금인 콜 자금을 마이너스 금리로 대출해주겠다는 내용의 안내문을 몇몇 금융기관에 보냈다.

돈을 빌려 가는 쪽이 이자를 내는 게 아니라 빌려주는 쪽에서 ‘사례비’ 조로 이자를 붙여주겠다는 것. 곧바로 외국계 금융기관 2곳이 이 돈을 쓰겠다고 나서 사상 초유의 마이너스 금리 거래는 성사됐다.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3일 일본의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지난달 24일 이후 콜금리가 마이너스로 떨어지는 상황이 이어져 가뜩이나 어수선한 금융시장 분위기가 더욱 흉흉해지고 있다고 전했다.

A은행은 150억엔을 빌려준 다음날 0.01%의 이자에 해당하는 금액을 빼고 대출금을 돌려받았다. 이 은행이 마이너스 금리를 감수하고 돈을 빌려주는 것은 물론 이익이 남기 때문.

A은행은 앞서 달러가 급히 필요한 일본 국내은행에 달러를 융통해주는 대신 엔화를 담보로 받았는데 이 돈을 나중에 돌려줄 때는 0.08%의 이자를 떼고 주기로 했다. A은행은 거액의 엔화 현금을 금고에 쌓아뒀다가 돌려줄 수 있지만 보관비용 등을 감안해 콜 자금을 연 -0.01%로 대출해주는 편이 훨씬 이익이라고 판단했던 것.

금융시장의 혈맥으로 비유되는 콜 시장에서 금리가 마이너스로 떨어진 것은 세계 각국에서도 전례가 없는 일. 금융 전문가들은 “장기불황과 국가신용등급 하락 등으로 일본의 국가 위험도가 얼마나 나빠졌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현상”이라며 “물가하락에 금리하락까지 겹치면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기가 더욱 힘들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도쿄=박원재특파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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