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그후1년]<1>재건 꿈꾸는 아프간 카불

  • 입력 2002년 8월 25일 18시 29분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 15일 카불 남서쪽 끝의 다루라만 궁으로 이어지는 도로의 복구 공사를 하고 있다. - 카불=김성규기자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 15일 카불 남서쪽 끝의 다루라만 궁으로 이어지는 도로의 복구 공사를 하고 있다. - 카불=김성규기자
카불에서 가장 크다는 만데이 시장은 사람들로 넘쳐났다. 곳곳에서 떠드는 소리와 각종 소음으로 시끌벅적했다. 어깨를 부딪칠 정도로 혼잡한 좁은 시장골목 사이로 수레를 끄는 짐꾼들의 동작이 날렵했다.

길 양옆으로 1평 남짓한 크기의 가게들이 끝없이 족히 1㎞는 넘게 이어졌다. 닭고기를 주렁주렁 매달아 놓은 정육점, 파키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이웃나라에서 들여온 과자 음료수 등을 파는 식료품점, 부르카를 팔고 있는 옷가게, 화장품을 파는 여성용품점, 건포도 아몬드 콩 등을 팔고 있는 곡물점….

가이드 겸 통역을 하고 있는 아하마드 아사자이(25)는 시장을 둘러보면서 “탈레반 시절에는 볼 수 없었던 물건들을 사러 나오거나 구경나온 사람들”이라며 “요즘 시장에 나오는 사람들도 그때보다는 열 배는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아프가니스탄 인구의 절반 가까이 차지하는 짙은 턱수염의 파슈툰족, 몽골 계통의 하자라족, 탈레반을 몰아낸 북부동맹의 주축이었던 타지크족, 국제치안유지군(ISAF) 소속의 백인 등 인종 전시장 같았다.

3년 전 아버지의 가게를 물려받아 곡물 가게를 하고 있는 압둘 라자크(24)는 “탈레반 시절에는 높은 세금 때문에 힘들었다”면서 “요즘은 물건도 잘 팔리고 무엇보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어 살맛이 난다”고 말했다. 그는 미군의 카불 폭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미군의 공습으로 몇 달간 장사를 하지 못했지만 덕분에 지긋지긋한 탈레반 치하에서 벗어나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특히 화장품 핸드백 등 여성용품을 파는 아하마드(20)의 가게는 손님들로 성황이었다. 탈레반 치하에서는 부르카를 쓰고 그것도 남자와 동반아래 외출이 가능했던 여성들이 지금은 혼자서 쇼핑한다. 이 가게에서 가장 인기 있는 것은 금속 장식이 달린 러시아제 핸드백이다.

카불의 거리는 전체적으로 활기가 넘쳤다. 길에는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사이로 택시들이 경적을 울리며 달렸다. 차 속에서는 비트가 강한 음악이 울려 나왔다. 탈레반 시절에는 텔레비전 시청과 음악감상이 금지됐었다.

그동안 방치됐던 카불 동물원에도 휴일을 맞아 놀러 나온 사람들로 북적댔다. 원숭이를 구경하고 있던 부르카 차림의 사피아(33)에게 남편의 허락을 받고 말을 붙였다. 사피아씨는 “요즘 자주 아이들과 손잡고 외출을 많이 한다”며 “평화가 왔고,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어 참 좋다”고 수줍게 말했다.

아사자이의 차를 타고 카불의 서쪽을 둘러봤다. 구 소련군이 물러난 뒤 내전으로 피해가 심했던 곳이다. 총탄 자국이 무수하게 난 집들이 끝없이 이어졌다. 당장이라도 무너질 듯한 건물 아래서 태연히 좌판을 벌여놓고 담배를 팔거나 자전거를 고치고 있는 사람들이 아슬아슬해 보였다.

허물어진 건물들 사이로 벽돌을 쌓아올리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전쟁을 피해 아프간을 떠났던 사람들이 돌아와 다시 집을 짓고 있었다. 남서쪽 끝에 위치한 다루라만 궁으로 이어지는 길에도 최근 복구 공사가 시작됐다. 사람들이 곳곳이 파인 도로를 뜯어내고 도로 포장을 새로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머지 대부분의 지역들은 20여년간 계속된 전쟁으로 도로와 전기, 통신시설이 파괴된 채 그대로 남아있었다.

아프간에서 활동하는 70여개 비정부기구(NGO)의 조율 및 지원 역할을 하는 ACBAR(Agency Coordination Body For Afghan Relief)의 샤피크 미르자자다 조정관은 “국제사회의 지원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올 1월 도쿄 국제회의에서 미국과 유럽연합, 일본 등은 5년간 45억달러의 아프간 부흥 자금을 약속했지만 올해까지 이 가운데 10%도 채 들어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카불을 제외하고 지방에 군벌들이 득세하고 있는 것도 외국의 지원을 막는 요인이라고 한 외신기자는 귀띔했다.

아모니 남자 고등학교의 사이드 파크로딘 파힘 교장(45)은 아프간 재건의 또 다른 어려움으로 전문 인력의 부족을 꼽았다. 내전과 전쟁을 피해 전문 인력들이 대거 해외로 빠져나간 데다, 탈레반이 여성의 사회활동을 금지해 대부분의 교사가 여성이었던 아프간의 전체 교육이 몇 년간 중단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카불 시내 거리 곳곳에 최근 그려놓은 ‘아이들을 학교로 보내자’는 내용의 포스터는 아프간 국민의 교육에 대한 열망을 반영하고 있다. 파힘 교장은 “그나마 다행한 것은 학교가 속속 문을 열어 학생들을 받아들이고 있고, 여교사들도 다시 돌아와 교사수 확보에는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최근 문을 연 말라라이 여학교. 하얀 천을 머리 위로 두르고 검은색 치마를 입고 있는 여학생들이 운동장에 삼삼오오 모여있다. 이날은 국경일인 독립기념일(19일) 퍼레이드 참가 연습으로 수업이 없었다.

나중에 저널리스트가 되고 싶다는 고등학교 1학년생 헬라이(15)를 통해 교육이 어떤 차이를 가져오는지 엿볼 수 있었다. 탈레반 시절 부모에 의해 파키스탄에서 공부를 계속한 헬라이양은 영어가 꽤 유창할 뿐만 아니라 5년 가까이 학교를 떠나있었던 다른 학생들에 비해 말과 행동에서 자신감이 넘쳤다. 모두들 사진찍기를 꺼렸지만 헬라이만은 기자의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카불(아프가니스탄)〓김성규기자 kimsk@donga.com

▼아프간 현대사 일지▼

◇1933∼1973 자히르 샤 국왕 통치

◇1973 국왕 사촌 다우드 전 총리의 쿠 데타, 샤 국왕 망명

◇1979.12 소련군 침공

◇1985 무자헤딘, 對蘇 게릴라전 개시

◇1989.2 소련군 철수

◇1994∼96 탈레반 등장 및 카불 점령

◇1998.9 탈레반, 전 국토의 80% 장악

◇2001

△9.11 9·11테러 발생

△10.7 미국 주도 연합군의

아프가니스탄 공격

△11.13 북부동맹 카불 입성,

탈레반 퇴각

△12.5 아프간 4개 정파, 임시정부

구성 합의

△12.22 임시정부 출범(수반 하미드 카 르자이)

◇2002

△1.21 아프간 재건 지원 국제회의

(일본 도쿄)

△4.18 자히르 샤 전 국왕,

29년 만의 귀국

△6.16 임시 로야 지르가(부족대표회 의), 과도정부 구성

◇2003 제헌 로야 지르가 소집,

신 헌법 채택 예정

◇2004.6 선거 통한 신정부 구성

▼카불의 女高부교장 와하크씨▼

“아프가니스탄의 재건은 여성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카불 시내 ‘아이샤이 도라니’ 여자고등학교의 하니파 와하크 부교장(35·사진)은 17일 “여성에 대한 학교 교육이 재개돼 말할 수 없이 기쁘다”며 이같이 말했다. 유능한 사람 100명만 있어도 사회는 크게 개선되기 때문에 아프간 국민의 반을 차지하는 여성에 대한 교육이 앞으로 아프간 재건에 크게 기여할 것이란 게 그의 설명이었다.

도라니 여고는 1996년 카불을 점령한 탈레반에 의해 강제로 문을 닫았다가 올해 1월 다시 문을 열었다. 이슬람 원리주의를 맹신했던 탈레반 정권은 여성에 대해 남성의 정신을 혼미하게 한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사회의 불필요한 존재로 보았다. 여성에 대한 교육이 전면 금지됐고, 사회활동도 의료부문으로만 제한됐다. 여성의 외출을 통제했고, 외출시에는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전신을 가리는 ‘부르카’를 강제로 입도록 했다.

와하크 부교장은 “탈레반이 아프간 여성의 역할을 축소시킨 것이 결국 아프간 전체 위기를 심화시켰다”며 “여성의 역할이 축소되면서 사회와 국가의 기본 단위인 가정이 무너졌고 결국 국가 전체에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와하크 부교장은 “아프간 여성들은 20세기초 남성들과 함께 영국 등 외세의 침략에 맞서 싸우는 등 예부터 강인한 면모를 보였다”며 “일부 여성들은 탈레반 시절에도 비밀리에 목숨을 내놓고 야학 활동을 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탈레반에 의해 강제로 학교를 떠났던 대부분의 이 학교 교사들은 다시 돌아왔다. 현재 학생 1250명에 교사는 95명. 이 가운데 여교사가 91명이다. 탈레반 시절 아프가니스탄의 교육이 얼마나 타격을 받았을지 짐작할 수 있다.

교사들은 돌아왔지만 교육 여건은 아직 열악하다. 교실이라 해봤자 바닥엔 비닐장판을 깔아 놓고 흑판을 하나 갖다 놓은 것이 전부. 탁자나 의자뿐만 아니라 학생들이 쓸 노트 등 필기도구도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와하크 부교장은 “부족한 게 많지만 아이들이 배우려는 열의가 담긴 눈동자를 보면 힘이 솟는다”고 말했다.카불(아프가니스탄)〓김성규기자

kim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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