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日-EU ‘보호주의’ 갈등

  • 입력 2002년 7월 28일 18시 41분


《일본 나라(奈良)에서 열린 미국 일본 호주 캐나다 유럽연합(EU) 등 5개국 농업장관회담은 농산물 관세율 대폭 인하 등 미국의 새로운 제안에 대해 일본과 유럽이 크게 반발한 가운데 27일 이틀간의 일정을 마치고 폐막됐다.》

▽미국의 새 제안〓미국은 회담 직전인 25일 △5년 이내 농산물 관세율을 25% 이하로 인하 △농산물 수출보조금 철폐 △저율관세 수입물량 20% 확대 △국내보조금은 농업생산액의 5% 이내 억제 등을 골자로 하는 새로운 농업교섭안을 발표했다.

미국의 이 같은 제안은 이번 주 제네바에서 열리는 세계무역기구(WTO) 농업부문 다자간 협상에서 공식의제로 상정될 예정이다.

미국의 제안은 기존 농산물 개방논의보다 한층 강도 높은 시장개방 요구를 담고 있어서 진행중인 WTO 도하라운드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된다.

다카베 쓰토무(武部勤) 일본 농림수산상은 “미국의 제안은 국제적인 합의를 얻기 위한 제안으로는 도저히 보이지 않는다. 환경보호나 식량안보 등 농업의 다양한 기능이나 각국별 입장 차이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EU의 프란츠 피슐러 농업담당 위원도 “미국의 제안은 일본이나 EU에 일방적인 요구만 할 뿐 미국이 해야 할 일은 전혀 포함돼 있지 않다”고 비판했다.

미국이 5월 자국의 농업보조금은 6년간 60조원가량 늘려 나가기로 해놓고서도 EU 등에 대해 수출보조금 폐지를 요구한 것도 지나치게 이기적이라는 비난이 비등했다.

▽쌀 관세 인하〓쌀 부문을 별도 논의해 온 기존 협상과 달리 품목별 논의를 배제하고 일률적으로 관세를 25% 이하로 낮출 것을 요구함으로써 한국 일본 등에 대한 쌀시장 개방 공세가 더욱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앤 베너먼 미 농무장관은 “일본에 있어서 쌀은 중요한 문제지만 쌀 관세 장벽을 낮추는 것은 (일본) 소비자에게 이익이 된다”며 쌀 관세 인하를 주장했다.

일본은 현재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등에 따라 전체 소비량의 7.2%를 수입하는 최소시장접근(MMA) 물량은 무관세이지만 이를 초과하는 물량은 490%의 고율관세를 적용하고 있다.

일본은 미국의 이번 제안이 쌀시장만을 겨냥한 것은 아니라고 보면서도 ‘제2의 쌀시장 개방 태풍’이 불어닥칠 것으로 보고 크게 긴장하고 있다.

올 1월에 시작된 WTO 농업교섭은 내년 3월까지 자유화 기본방침을 확정한 뒤 9월 멕시코에서 열리는 제5회 WTO 각료회담에서 각국별 구체적인 자유화 일정을 제출받아 2005년 최종 합의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도쿄〓이영이특파원 yes202@donga.com

▼I think …최낙균 실장▼

미국이 농산물 관세율 대폭 인하 등을 제안한 것은 앞으로 시장개방을 위해 더욱 강도 높은 공세를 펴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미국의 제안에 대해서는 일본과 유럽연합(EU) 등 수입국의 반발이 거센 만큼 쉽게 합의에 이를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당장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해도 시장개방을 재촉하는 분위기가 고조될 것임에는 틀림없다.

미국은 농산물 관세를 25% 이하로 낮추자고 제안했는데 한국의 농산물 평균관세율은 그 2배도 넘는 60% 안팎에 이른다. 특히 미국은 별도협상에서 논의돼 온 쌀을 ‘농산물’에 포함시킴으로써 쌀 협상의 유연성을 배제하겠다는 입장이다. 한국은 쌀 수입 물량을 최소시장접근(MMA)으로 묶어놓고 그 이상은 수입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이는 MMA를 정해놓되 그 이상의 수입분은 490%의 관세율을 적용하는 일본보다 더 불리한 입장이다.

농업보조금도 문제다. 미국이 자국 내 농업보조금을 늘리면서 외국의 보조금을 감축 또는 철폐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지만 전체 추세는 보조금을 없애는 쪽으로 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쌀 수매 등 국내 농가지원 정책도 대폭 재검토해야 한다.

한국으로선 세계무역기구(WTO) 협상의 지연을 기대하고 개방을 늦추는 소극적 대응은 바람직하지 않다. 오히려 독자적인 개방일정과 자발적인 농업구조조정 계획을 세우고 새로운 비전으로 국민적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 ‘개방하면 죽는다’는 부정적인 사고보다 ‘개방을 경쟁력 강화의 계기로 삼는다’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WTO 농업교섭 주요일정▼

2000년 3월 농업교섭 개시

2001년 11월 제4회 WTO각료회담에서 도하라운드 개시 결정

2002년 1월 도하라운드 개시

7월 5개국 농업장관 회담

2003년 3월 농산물 자유화 기본 방침 결정. 9월 제5회 WTO 각료회담. 기본방침 토대로 각국별 개별품목 자유화안 제출

2005년 1월농업부문 포함 WTO

전 교섭 분야 합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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