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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4월 15일 17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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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측은 소송과 함께 파업이나 대규모 시위 등을 통해 이를 사회적으로 이슈화해 나갈 계획. 그러나 이미 소멸시효가 지났다는 법적인 문제 외에도 대부분의 백인들은 노예제도 자체를 불법으로 인정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보이고 있어 자칫 새로운 인종 갈등의 소지마저 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전했다.
▽소송 내용〓미국 뉴욕의 에드워드 페이건 변호사는 최근 3000만명에 달하는 미국내 흑인노예 후손들을 대신해 대기업들을 상대로 선조들이 받지 못한 임금과 이익을 배상하라는 일련의 소송을 제기했다.
피소 기업은 미국 최대 보험회사인 애트나(노예주 상대 보험영업), 금융서비스그룹 플리트보스턴(노예 무역사업가에 자금 지원), 철도회사 CSX(노예 노동력으로 철도 건설) 등이다.
보험회사 뉴욕 라이프, 금융기업 리만브러더스 등 추가 소송 예정 기업도 60여개에 달한다. 원고측은 피해액을 최소 1조4000억달러, 배상 규모를 수백억달러로 추산하고 있다. 당시 착취당한 임금 1달러는 기업의 성장 등을 감안하면 현재 6250∼40만달러에 달한다는 것.
미국 흑인 운동가 데드리아 파머 팰만은 지난달 26일 노예제 배상 소송을 처음 제기, 페이건씨를 변호사로 선임했다.
▽과거의 선례〓90년대 1000만명의 나치 희생자들이 독일의 화학회사 데구사와 종합 가전회사 지멘스를 상대로 피해배상을 청구한 바 있다. 당초 법원은 ‘정치 외교적 문제’라며 소송을 기각했으나 반발 여론에 밀려 독일 정부와 기업이 공동으로 520억달러의 기금을 설립했었다.
▽전망과 쟁점〓피소 기업들이 원고와 합의를 모색할 가능성이 높다. 엄청난 배상액을 감안, 피소 기업들은 정부가 피해자들을 위한 기금을 설립하도록 요청하고 있다.
그러나 법률적인 면에서는 피소 기업들의 부당이득을 정확히 산정하기 어렵고 사건 자체가 이미 소멸시효를 지났다는 해석도 적지 않다. 노예제 철폐로 해당 회사들이 체결한 계약 자체가 이미 법적 효력을 상실한 상황에서 이를 소급 적용할 수 있느냐는 것. 미국에 건너온 흑인들이 비록 노예였지만 아프리카에 남아 있던 것보다 훨씬 열악한 삶을 살았는지 여부도 논란거리다. 이 때문에 원고측은 여론몰이에 기대는 눈치다. 페이건 변호사는 파업이나 주주소송, 흑인 폭동을 경고했다. 8월 워싱턴에서는 ‘배상을 위한 수백만의 행진’도 계획돼 있다.
그러나 여론은 이들의 기대 이하다. 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백인의 70%는 노예제에 대한 공식 사과조차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흑인 지도자들간에 의견도 분분하다. 제시 잭슨 목사는 소송에 찬성하나 일부는 정부의 배상이나 공식 사과, 흑인 교육을 위한 투자를 대신 받아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흑백 갈등을 부추길 소지가 있다는 우려도 있다.
곽민영기자 havef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