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환 불가능한 ‘반쪽화폐’…아르헨 새통화 성공미지수

  • 입력 2001년 12월 25일 18시 03분


새 화폐 ‘아르헨티노’를 발행해 기존의 페소화와 동시통용시키기로 한 아르헨티나 과도정부의 선택은 성공할 것인가.

남아프리카공화국 쿠바 등 일부 국가가 이중통화제를 시행하고 있긴 하지만 아르헨티나의 이번 제도는 양 통화 사이의 태환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지구촌 사상 초유의 ‘실험’으로 평가된다.

▽왜 ‘제3의 통화’인가〓아르헨티나 정부의 경제운용 카드는 크게 3가지였다. 이 중 월가가 집요하게 요구해온 것이 아르헨티나 페소화의 평가절하.

그러나 이 방안은 △아르헨티나 대외부채 1321억달러 중 952억달러가 달러표시 부채이므로 채무부담을 평가절하 폭만큼 늘리는 데다 △국민의 구매력을 크게 떨어뜨린다는 점에서 정치적 부담이 크다. 23일 갤럽이 조사한 설문조사에서는 아르헨티나 국민의 79%가 평가절하에 반대했다.

두 번째는 평가절하와 정반대인‘달러화정책(Dollarization)’. 미 달러를 자국의 법정통화로 지정하는 것이다. 송치영 국민대교수는 “환위험을 없앨 수 있지만 통화주권이 미국에 넘어가기 때문에 통화증발을 통한 경기진작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제3의 통화’는 평가절하로 가는 징검다리〓아르헨티나 정부가 고른 새 통화 발행안은 두 가지 문제를 우회하는 제3의 방안. ‘무이자 국채’ 성격인 아르헨티노를 찍어 공무원 급여와 연금 등 긴급한 재정자금으로 활용하려는 것. 동덕여대 김태준 교수는 “경기를 살리기 위해 페소화를 찍어내려면 동일한 가치의 달러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며 “신화폐 발행은 불가피한 면이 있다”고 평가했다.

문제는 새 화폐가 페소화와 바꿔주지 않는 ‘반쪽’ 화폐라는 점. 양화(良貨)와 악화(惡貨)가 공존하게 되는 셈이다. 따라서 두 화폐의 유통을 완전히 자율에 맡길 경우 악화가 양화를 내쫓는 이른바 ‘그레셤의 법칙’이 적용돼 페소화는 시장에서 서서히 퇴장하게 된다.

국제금융 시장에서는 이 같은 문제 때문에 아르헨티나 정부가 페소화와 신화폐를 잠정적으로 병용하다 페소화 사용을 점차 줄여나가면서 결국 시장에서 퇴출시키는 사실상의 평가절하를 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박래정기자>eco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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