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종 하루 뒤 안타까운 죽음…'사린가스' 보도 후 피살

  • 입력 2001년 11월 20일 18시 48분


“우리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 침묵은 무겁고 불길했다.”

죽음을 예감했던 것일까. 사살되기 하루 전인 18일 아프가니스탄의 테러조직 캠프에서 신경가스인 ‘사린’으로 보이는 유리병을 발견해 특종보도를 한 이탈리아 여기자 마리아 그라지아 쿠툴리(39)가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쿠툴리 기자는 이탈리아 일간지 코리에레 델라 세라 1면 머리기사에서 “잘랄라바드에서 자동차로 약 한시간 거리의 파름 하다에 있는 테러조직 캠프에서 ‘사린’ 라벨의 유리 약병을 발견했다”며 “이 캠프는 오사마 빈 라덴의 테러조직이 사용하다 급히 포기하고 떠난 곳”이라고 썼다.

수년 전부터 중동문제를 취재해온 쿠툴리 기자는 9·11 테러 직후 파키스탄의 이슬라마바드에 급파됐고 최근 아프가니스탄으로 들어갔다.

그의 사망 소식을 접한 신문사 편집국은 각계 인사의 조전이 쇄도하는 가운데 비통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페루치오 데 보르톨리 편집국장은 “어떠한 특종도 기자의 생명보다 더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고 고인의 죽음을 애도했다.

쿠툴리 기자는 로이터통신 사진기자 등 서방언론사 기자 3명과 함께 19일 아프간 남부 잘랄라바드를 떠나 카불로 가던 중 무장괴한들의 매복공격을 받고 숨졌다.

살아 남은 아프간인 운전사에 따르면 좁은 산악도로에서 괴한 6명이 갑자기 나타나 차를 세우고 기자들을 산 쪽으로 끌고 가려다 이들이 거부하자 마구 구타를 한 뒤 “탈레반은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여전히 정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복수를 할 것이다”며 기자들에게 총을 난사했다.

<윤양섭·김정안기자>laila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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