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백색테러 충격]"직장잃은 러 과학자 탄저균 유출 의심"

  • 입력 2001년 10월 18일 18시 57분


미국 내에서 확산되고 있는 탄저균 공포는 급기야 의회 활동을 정지시키는가 하면 의회와 언론이 행정부의 대처방식을 비난하는 등 미국의 국가체제를 뒤흔드는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톰 대슐 상원 민주당 원내총무에게 배달된 탄저균 분말로 인해 탄저균에 감염된 의회 관계자 수가 31명이라는 사실이 알려진 17일 의회는 물론 모든 미국인들은 충격과 불안에 빠졌다.

○…탄저균 공포에 대한 행정부의 대처가 적극적이지 못하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조지프 리버맨 상원 행정부문제위원회 의장은 “누가 탄저균 문제를 총괄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정부의 탄저균 관련 정보 발표가 너무 늦고 믿을 만한 정보원이 없어 혼란이 더욱 가중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데니스 해스터트 의장은 대슐 총무 사무실이 위치한 상원 의원회관 건물의 환기구에서 탄저균이 발견됐다고 말해 더 많은 감염자가 나올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으나 관계당국은 검사 결과 이곳에선 탄저균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워싱턴포스트지는 18일 탄저균 검사 및 방역 등을 총괄하고 있는 미 질병통제 및 예방센터(CDC)나 백악관, 공보실 등 정보의 진위를 확인해줄 수 있는 관계 당국의 취재가 거의 불가능하다며 불만을 나타냈다.

○…뉴욕 NBC방송에 보내진 탄저균 포자와 플로리다 선지(紙)에 배달된 탄저균 포자가 같은 균종인 것으로 밝혀져 동일인이 보냈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CDC 관계자는 17일 1차 조사결과 두 포자가 같은 균종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균종이 같다고 해서 동일인이 보냈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현재까지 밝혀진 균종의 수가 1200여종에 이른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럴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

이에 앞서 미 법무부는 NBC방송 뉴스 앵커 톰 브로코 앞으로 배달된 우편물과 대슐 총무 앞으로 배달된 우편물이 같은 지역의 우편소인이 찍혀 있고 필체와 편지 내용이 유사해 동일인이 보냈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미 연방수사국(FBI)은 브로코 앵커와 대슐 총무에게 배달된 우편물의 바코드 분석을 토대로 이들 우편물이 뉴저지주 트렌턴 지역의 어느 우체국에서 언제 취급됐는지를 확인하는 한편 우체국의 감시 비디오테이프 분석작업을 통해 용의자를 추적하고 있다.

또 미 검역당국은 뉴멕시코주의 로스앨러모스 국립연구소에 의뢰해 문제가 된 탄저균의 뿌리를 캐는 한편 이라크 등 생물무기 생산능력을 갖고 있는 국가의 탄저균 샘플과 이를 대비하는 작업도 진행중이다.

○…토미 톰프슨 보건부장관은 17일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유일한 탄저병 치료제로 승인 받은 시프로가 품귀현상을 빚자 페니실린과 독시사이클린 등 항생제 2종을 치료제로 추가 승인했다.

뉴욕타임스지는 이날 사설에서 탄저병에 대한 과민반응으로 인해 시프로 사재기 현상이 빚어지고 있는 것에 우려를 나타내며 정부에 치료제를 충분히 확보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했다.

○…미 행정부는 탄저균 공포가 갈수록 테러일 가능성이 커짐에 따라 테러리스트들이 천연두를 테러 수단으로 사용할 것에 대비해 천연두 백신 보유량을 대폭 늘리기로 결정했다.

톰프슨 장관은 17일 MSNBC와의 회견에서 “미국의 천연두 백신 보유량을 현재의 1540만회분에서 7700만회분으로 늘리기로 했다”며 이를 위해 이날 5억달러의 예산을 의회에 요청했다고 밝혔다.

○…미국의 각급 우체국들은 탄저균이 든 것으로 의심되는 우편물을 골라내고 직원들을 보호하기 위해 모든 우편물을 사실상 ‘취급주의’ 우편물처럼 다루느라 막대한 시간과 인력을 쏟고 있다.

또 미 국방부는 우편물을 취급하는 모든 직원에게 장갑과 마스크를 착용하도록 하고 있으며 환기구에 대해서도 정기적인 조사를 실시하고 있다고 CNN방송이 전했다.

○…17일 일본 오사카(大阪) 미 총영사관에 백색가루가 든 우편물이 배달돼 경찰이 내용물 조사에 나섰다.

또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사라예보에 있는 미 대사관도 ‘보안상 위협’을 이유로 잠정 폐쇄됐다.

○…미국을 ‘백색 공포’ 속으로 몰아넣고 있는 탄저균의 출처가 러시아일 가능성이 크다고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가 18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유엔의 이라크 무기사찰단장을 역임한 데이비드 켈리의 말을 인용해 “의심되는 국가를 지목하라면 러시아는 분명 그 중 하나가 될 것”이라며 “러시아는 이라크보다 한수 위”라고 말했다.

신문은 또 구 소련의 비밀세균전 프로그램에 참여했다가 직장을 잃은 러시아 과학자들이 미국에서 나타나고 있는 탄저균의 출처일 가능성이 있다며 오사마 빈 라덴의 테러조직 알 카에다가 최근 몇 년 동안 러시아에서 대량파괴무기 원료 구매를 시도했다고 전했다.

<신치영기자·워싱턴〓한기흥특파원>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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