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알 왈리드왕자 “美도 자성을…”에 참사성금 퇴짜

  • 입력 2001년 10월 12일 19시 13분


사우디아라비아의 갑부 알 왈리드 빈 탈랄 왕자가 11일 미국 뉴욕참사 복구지원 성금으로 1000만달러(약 130억원)를 내놓았다가 퇴짜를 맞았다. 그가 성금을 내면서 발표한 성명내용이 미국인들을 격분시켰기 때문.

세계 6위의 부자인 알 왈리드 왕자는 이날 루돌프 줄리아니 뉴욕시장의 안내로 세계무역센터 테러참사 현장을 둘러본 뒤 1000만달러의 수표가 들어 있는 봉투를 건넸다.

그는 이 자리에서 이번 테러는 천인공노할 범죄라며 “사우디아라비아는 진심으로 미국과 입장을 같이한다”고 밝혀 박수갈채를 받았다.

하지만 같은 시간 그의 수행진이 기자들에게 돌린 성명서가 문제가 됐다. 성명서는 “현 시점에서 테러가 왜 생겼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한다”며 “미국정부는 중동정책을 재검토하고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 좀더 균형 있는 입장을 취해야 한다”고 밝혔다. 성명서에는 “우리의 팔레스타인 형제들은 세계가 외면하는 동안 이스라엘인들의 손에 의해 계속 살해당하고 있다”는 표현도 들어 있었다.

줄리아니 시장은 뒤늦게 이 같은 내용을 전해듣고는 격분, 막바로 기자회견을 열어 “5000∼6000여명의 무고한 생명이 희생된 마당에 그런 말을 한다는 것은 무책임하고 매우 위험한 짓”이라며 성금을 반납한다고 발표했다. 알 왈리드 왕자는 사우디행 비행기를 타기 직전 이 소식을 들었으나 대변인을 통해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상황” 이라며 대응을 하지 않았다.

사우디 파드 국왕의 조카이자 20억달러(약 26조원)의 자산가인 알 왈리드 왕자는 9·11 참사 직후 4억달러를 추가로 투입해가며 미국 증시 폭락을 막는 데 일조했다.

<권재현기자>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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