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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10월 8일 05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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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심장부인 수도 워싱턴과 뉴욕이 지난달 11일 4대의 피랍 항공기에 의해 유린된 지 26일 만이다.
지난달 11일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이 2대의 항공기 테러로 산산조각나고 펜타곤(국방부 건물)이 불타올라 6000여명의 희생자가 발생했을때만 해도 미국은 추호의 머뭇거림없이 빈 라덴과 그를 보호해주고 있는 탈레반 정권을 초토화시킬 것 같은 기세였다.
건국 이래 본토에서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미증유의 항공기 테러로 정부와 국민은 삽시간에 공황상태에 빠졌고 여론의 90% 이상이 당장 ‘복수의 칼’을 빼들라고 부추겼다.
조지 W 부시 대통령도 13일 “21세기의 첫 전쟁을 승리로 이끌 것”이라며 군사보복을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호와 칼빈슨호가 인도양의 아라비아해로 떠났다. 뒤에 알려졌지만 이날 이미 미국과 영국의 특수부대가 파키스탄을 거쳐 아프가니스탄으로 잠입, 빈 라덴의 사살 혹은 체포 작전에 돌입했다.
미 연방수사국(FBI)은 4000여명의 정규인력과 3000여명의 보조인력을 투입, 사상 최대 규모의 수사를 펼치며 용의자와 배후 색출에 들어갔고 테러 여객기에 탑승한 범인 18명의 신원을 확인했다.
미 상하원은 14일 테러와의 전쟁을 위한 400억달러의 추가 예산을 배정함으로써 군사공격에 나서기 위한 강력한 발판을 마련했다. 미국 정부는 16일 탈레반에 빈 라덴을 인도하라며 3일간의 시간을 주겠다는 최후통첩까지 전달했다.
그러나 미국의 전면공습에 따른 아랍권의 반발과 난민처리 문제 등의 후유증에 대한 우려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공격 신중론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동시에 테러의 배후로 지목돼온 빈 라덴의 소재 파악이 여전히 난망했고 빈 라덴이 테러를 조종했다는 결정적 증거를 제시해야만 미국에 협조하겠다는 중동 국가들의 ‘버티기’도 이어졌다.
하지만 미국은 19일 항모 엔터프라이즈호와 칼빈슨호가 대기중인 아라비아해로 시어도어 루스벨트호를 추가 파견했고 본토의 항공기를 페르시아만으로 이동시킴으로써 본격적인 전쟁준비에 들어갔다. 22일엔 미 82공수여단과 101공수타격사단 선발대가 파키스탄에 도착했다.
탈레반도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탈레반은 18일 영공을 폐쇄하고 국경지역에 중화기와 병력을 증강배치했다. 최고지도자 모하마드 오마르는 국민에게 대미 항전에 나설 것을 촉구했고 미국의 군사공격을 돕는 이웃나라는 보복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최고성직자회의도 20일 빈 라덴의 자진출국을 권고키로 했으나 인도 요구는 거부했다.
이런 가운데 미국은 탈레반에 대한 외교적 고립과 빈 라덴 조직에 대한 자금줄 차단 작전에 나섰다. 미국은 23일 빈 라덴과 테러단체의 미국 내 자산을 동결키로 했으며 프랑스 등 유럽연합(EU)과 아시아의 국가들이 동참했다. 미국은 아울러 98년 인도와 파키스탄이 핵실험을 실시한 뒤 부과해온 제재조치를 철회함으로써 확실히 미국편에 서도록 종용했다. 또한 아랍에미리트가 22일 탈레반과 단교한데 이어 사우디아라비아도 25일 그 뒤를 따르면서 탈레반은 고립무원에 빠졌다. 파키스탄은 28일 성직자와 군장성으로 구성된 대표단을 다시 탈레반에 파견, 빈 라덴을 넘기라고 강력히 촉구했으나 거부당했다.
96년 정권에서 물러난 뒤 탈레반과 무력투쟁을 벌여온 북부동맹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도 이때쯤. 북부동맹은 1일 이탈리아에서 망명중인 자히르 샤 전 아프가니스탄 국왕과 탈레반 정권의 붕괴에 대비해 과도정부를 구성하기로 합의, 포스트 탈레반의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동시에 10월들어 미국의 공격준비는 급피치를 올리기 시작했다.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이 3일부터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5개국을 방문하며 반미여론을 잠재우는 동시에 토니 블레어 총리는 러시아와 파키스탄을 방문해 탈레반을 고립시키기 위한 외교적 총공세를 펼쳤다.
급기야 6일 미 제10산악사단 병력 1000명이 아프가니스탄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우즈베키스탄에 배치되기 시작하면서 미국의 공습 시작이 가시권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7일 밤 12시 무렵 일본의 교도통신은 북부동맹의 한 소식통을 인용해 “이르면 7일 밤(현지시간, 한국시간 8일 새벽)에 공격이 시작될지 모른다”고 전했다. 이로부터 채 두 시간이 지나지 않아 CNN방송 화면에는 개전 소식을 알리는 급박한 아나운서의 목소리와 함께 어둠 속에 꼬리를 물고 날아가는 포탄과 미사일 모습이 등장했다. 마침내 현재로서 언제 끝날지 짐작하기 어려운 새로운 형태의 전쟁, ‘테러와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이종훈기자>taylor5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