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1년 10월 6일 18시 51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맨스필드 전 상원의원은 젊은 시절 미군 사병으로 일본 등지를 여행한 것이 인연이 돼 몬태나 대학에서 극동지방 역사를 강의하는 교수로 일했다.
1943년 하원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한 그는 5선의 경력을 쌓은 뒤 52년 상원에 진출했다. 61년 린든 존슨 당시 상원의원이 존 F 케네디 대통령 정부의 부통령이 되자 그로부터 상원 다수당인 민주당 원내총무직을 물려받아 16년간 자리를 지켰다. 상하원 모두 합쳐 34년간 의원직을 유지했다. 미 정계에서 알아주는 일본통이었던 그는 하원의원이던 45년 해리 트루먼 대통령에게 “전략상 일본 왕을 처벌하지 말 것”을 건의해 관철시키기도 했다.
그는 60년 민주당 원내부총무 시절 한국 등 극동을 순방한 뒤 당시 장면(張勉) 정권에 한반도 통일모델로 오스트리아식 중립화 방안을 제안해 혁신계가 요구하던 중립화 주장에 불을 댕기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76년 지미 카터 대통령에 의해 주일대사로 임명된 그는 공화당 출신인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집권했을 때도 유임돼 모두 11년간 주일대사로 활약했다.
그는 일본이 경제강국으로 일어서고 미국의 대일(對日) 무역적자가 늘어나 양국간에 갈등이 일던 시절에 주일대사로 일했으나 미국 내 반일 정서를 누그러뜨리고 일본의 대미 무역장벽을 낮추는 등 외교역량을 발휘했다.
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 전 일본 총리는 6일 그의 타계에 대해 “그가 일본을 위한 대사였는지, 미국을 위한 대사였는지 분명치 않을 정도였다”고 고인을 기렸다.
1903년 뉴욕의 한 호텔 문지기로 일하던 아일랜드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난 맨스필드 전 상원의원은 3세 때 모친이 별세하자 몬태나주의 친척집에서 자랐으며 고학으로 어렵게 학업을 마쳤다.
<권기태기자>kk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