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계 ‘보복테러’ 공포… 美서 40여건 잇달아

  • 입력 2001년 9월 18일 18시 49분


'이슬람계 폭력 중단을'
'이슬람계 폭력 중단을'
미국 텍사스대 중동문학과 교수이자 이슬람교도인 모하메드 모하메드는 11일의 테러 참사 직후 지나가던 행인이 자신에게 입에 담기 힘든 욕을 하고 얼굴에 침을 뱉어 한동안 넋을 잃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는 이 사건 이후 외출을 삼가고 부득이 외출해야 할 때는 머리에 두르는 터번을 뗀 채 나간다.

캘리포니아주 스탠퍼드대의 존 헤네시 총장은 지난 주말 1700여명의 교수 및 직원에게 e메일을 보내 테러 참사와 관련해 학생들이 이성을 잃지 않도록 지도해 줄 것을 부탁했다. 일부 학생들이 중동계 학생들에게 협박성 e메일을 보내는 등 위협을 가하고 있다는 사실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자살비행테러 이후 아랍계와 이슬람교도를 겨냥한 보복 공격과 증오 범죄가 잇따르고 있어 당사자들은 물론 미국 정부까지 긴장하고 있다. 17일 현재 미 연방수사국(FBI)이 집계한 보복 또는 증오 범죄는 40여건. 16일 애리조나주에서 한 주유소를 운영하던 인도계 주민이 총에 맞아 숨졌고 지난 주말엔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파키스탄인이 피살됐다. FBI는 이 사건들이 증오 범죄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수사 중이다.

이에 따라 600만명에 달하는 이슬람 종교단체들은 비상에 들어갔으며 이슬람 지도자들은 TV에 출연해 미 국민의 자제를 호소했다. 또 로버트 뮬러 FBI 국장은 17일 기자회견을 갖고 “아랍계 미국인에 대한 테러를 용납지 않겠다”고 밝혔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이날 직접 워싱턴의 이슬람사원을 방문해 “테러의 얼굴은 이슬람의 진정한 신앙과는 다르다”며 미 국민에게 ‘보복성 테러’를 가하지 말도록 당부했다. 스탠퍼드대 사회학과 신기욱 교수는 “테러에 대한 분노와 두려움, 전쟁에 대한 초조감 등으로 미 국민은 지금 큰 혼란에 빠져 있다”며 “증오 범죄는 이러한 혼란의 한 단편적인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김정안기자>cred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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